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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번의 분노 20년의 염원 평생의 아픔

Posted December. 12, 201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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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피해 배상을 요구하며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가 14일로 1000회를 맞는다. 수요집회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단일 주제로 2002년 3월 열린 500회 집회가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뒤 매주 기록을 경신하며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집회를 주최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리기 위해 1000회 집회 당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를 형상화한 평화비 제막식을 연다. 또 이날 일본을 포함한 미국, 독일 등 전 세계 9개국 37개 도시에서 연대 집회를 동시에 열어 1000회로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세계가 집중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1000번의 싸움성과는?

첫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열렸다. 정대협 등 여성단체 회원 30여 명이 모여 첫 집회를 연 이후 20년 간 수요집회는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려왔다. 수요집회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마저 숨겨야 할 문제로 왜곡돼있던 위안부 문제를 양지로 끌어냈다는 것이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수요집회가 시작되면서 할머니들은 스스로를 말 못하는 피해자에서 여성 인권 운동의 당당한 주체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수요집회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안돼 1992년 1월 24일 정신대문제 실무대책반을 만들어 관련 증거 자료를 조사하고 정신대 피해자 신고를 받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초반 한달에 34번씩 비정기적으로 열리던 집회는 1993년 2월 25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1995년 8월 일본 고베 대지진때 집회를 취소했던 것과 올해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추모집회로 대신했던 것을 제외하곤 중단된 적이 없다. 피해 할머니들도 직접 집회 현장에 나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1993년에는 비엔나 세계인권회의 결의문에 위안부 문제가 포함됐다. 1998년에는 유엔인권소위원회가 일본에 위안부 문제의 조기해결을 권고하는 맥두걸 특별보고관 최종보고서를 환영한다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007년에는 미국의 마이크 혼다 민주당 의원 등 7명이 위안부피해자 관련 결의안을 공동 제출해 미 하원 본회의에서 채택됐다.

수요집회는 2002년 3월 500차 집회를 기점으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단일 주제의 장기 집회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정대협 측은 피해 할머니와 시민단체, 어린이, 시민 등을 포함해 연간 집회 참여자를 5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답 없는 일본, 뒷짐 진 한국 정부

정대협은 1차 수요집회 때부터 줄곧 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진상규명, 일본 국회 결의를 통한 사죄, 법적 배상, 역사교과서 기록,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책임자 처벌의 7가지 사항을 일관되게 요구해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어느 하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 배상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 위안부에 대한 개인 청구권도 모두 해결돼 안된다는 자세다. 이 때문에 일본의 공식사과와 피해 배상을 받아내는 일은 1000회 이후에도 추진해야할 중요한 과제다. 윤 대표는 다시 시작되는 1회(1001회) 집회부터는 국제 연대를 더욱 강화해 일본이 변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 관계 악화를 우려해 일본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한국 정부가 1000회 이후 달라져야 한다는 게 피해 할머니들의 바람이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4명 중 현재까지 169명이 별세했다. 올해만 14명이 세상을 떠났다.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65명에 불과하다. 정대협 관계자는 생존해 증언해줄 피해자가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 정부가 나서서 공식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헌법재판소가 8월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분쟁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데 소극적이다. 외교통상부는 헌재 결정 이후 한일청구권 문제 전담팀을 만들어 일본 외무성에 협정문 해석에 관해 양국 간 협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공문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공식 응답을 받지 못했다.

윤 대표는 1000회까지는 정대협 등 민간이 나서서 일본을 압박했다면 이제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서서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주 김태웅 hjson@donga.com pi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