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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독학 원문해석 논문 이걸, 17세 고교생이 썼다고? (일)

삼국사기 독학 원문해석 논문 이걸, 17세 고교생이 썼다고? (일)

Posted February. 06, 201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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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구 청구고 2학년 4반 담임을 맡은 노광우 교사는 자기 반 윤성환 군(17)이 낸 과제물을 보고 윤 군을 불러 다그쳤다. 누가 봐도 어른 글씨, 게다가 군데군데 한자()를 섞어 쓴 모양새가 고2 학생이 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교사는 이제 윤 군 공책에 한글보다 한자가 더 많아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역사공부를 하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원문을 찾아 골똘히 연구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노 교사는 성환이는 혼자 책 읽고 연구하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조용한 학자 타입이라고 제자를 소개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처음 윤 군의 논문을 받았을 때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고전번역원 관계자는 굉장히 수준 높은 글이었다. 내용이 새로운 연구 업적이고 공인된 수준인 건 틀림없었다면서 단, 고등학생이 직접 썼는지가 문제였다. 그런데 이미 그 정도 수준의 논문을 많이 썼다는 걸 알고 더 놀랐다고 말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회지() 민족문화 1월호에 윤 군이 쓴 고구려 전기의 사면령()을 실었다.

윤 군은 작년 2학기 때 신종인플루엔자A(H1N1) 때문에 일찍 하교하는 날이 많았다. 여름방학 때부터 꾸준히 삼국사기를 읽었는데 마침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면서 사면령 부분은 고구려에서 권력을 확립해 가는 과정을 보는 데 하나의 지표로 활용할 수 있겠다 싶어서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윤 군은 기성 논문을 찾아 가며 논문 형식도 그럴듯하게 갖췄다.

윤 군이 초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에 위기가 닥치면서 가족이 어려움을 겪었다. 그 뒤로 어머니가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살림을 꾸려가는 형편이다. 윤 군은 책 속에서 희망을 찾았다. 방과 후면 늘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읽었다. 윤 군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때부터 책 읽고 글을 써서 상품권 받으면 다시 책을 사서 보던 아이라며 외아들을 대견해 했다. 윤 군은 국사뿐 아니라 세계사에도 관심이 깊다. 공부법은 오로지 독학이다.

윤 군은 모든 과목 성적이 골고루 뛰어나지는 않다. 노 교사는 전형적인 우등생은 아니다며 그래도 역사, 사회 분야는 교내 최고 수준이다. 시험성적은 물론이고 실제 지식수준은 따라올 학생이 없다고 말했다.

묵묵히 책 속에서 자기 길을 찾아온 윤 군의 노력은 대학입학사정관들 사이에서도 잔잔한 울림을 불러일으켰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입학 담당 교수는 (처음 논문을 보고) 말 그대로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아낸 기분이었다. 이런 학생이야말로 입학사정관제에 적합한 학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군은 이 소식을 듣고도 겸손해 했다. 윤 군은 아직 너무나 깊고 넓은 학문의 세계에 깊이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저 조용히 역사에 대한 열정을 품고 제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규인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