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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폴란드 노조

Posted July. 08, 200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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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을 공산주의 붕괴의 상징적인 날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폴란드 국민은 다르다. 이보다 다섯 달 앞선 1989년 6월 4일이 진짜 공산주의 제삿날이라고 믿는다. 이날 동구권 최초로 폴란드 자유선거가 있었기에 구소련 위성국가에 민주화 바람이 퍼지고, 베를린 장벽 붕괴도 가능했다는 거다. 올해 폴란드 민주화 20주년 기념식이 자유노조 연대의 산실인 그단스크에서 성대하게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서둘러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자유노조가 시위를 일으켜 행사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1만5000명을 넘었던 그단스크 조선소의 근로자는 지금 2500명으로 줄었다. 경영위기로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다 2년 전 우크라이나에게 팔렸다. 여기엔 자유노조의 책임이 크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지적했다. 스스로 민주화를 이끈 대단한 노조라고 우쭐대며 20년간을 경영자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세계 조선업계가 호황을 맞았을 때 그단스크 조선소는 이미 빚더미에 빠진 상태였다. 정부가 구조조정이나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입만 떼면 노조는 파업으로 맞섰다. 6월 4일 같은 대목을 파업전문 노조가 놓칠 리 없다.

어제 폴란드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과 폴란드는 역사 발전과정이 비슷해 첫 방문이지만 친밀감을 느낀다고 했다. 민주 돌림자를 붙인 우리 강성노조도 폴란드의 연대와 비슷하고도 친밀하다. 지난해 집권한 도날트 투스크 중도우파 총리는 전임자의 국내시장 보호정책을 뒤집고 외국기업 유치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자유노조는 여전히 찬란했던 투쟁의 추억에 사로잡혀있다. 폴란드 국민 사이에선 이제 연대라는 브랜드는 은퇴할 때가 됐다는 불만이 높다.

세계 모든 노조가 폴란드 같은 건 아니다. 누구도 경쟁력 없는 기업을 살릴 순 없다. 글로벌 경쟁력이 없는 일자리는 과감히 털어내고 우리는 톱클래스 상품과 서비스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스웨덴의 사브자동차 노조대표 알렉산다르 수사도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유럽순방 중에 스웨덴에 들른다. 우리 노조 대표와 함께 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