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름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작년 11월부터 개명()이 쉬워지면서 법원에 접수되는 개명 신청이 최근 월 1만 건을 넘었다. 이름이 놀림감이 돼서 바꾸려는 사람도 있지만 개명으로 팔자를 고쳐 보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30년째 작명 연구를 해왔다는 정명국(51서울) 씨는 운명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 중 이름의 영향은 크지 않으므로 엉터리 작명가에게 속지 말라고 충고한다.
요즘 각 부처는 정책에 좋은 이름을 붙이느라 바쁘다. 청와대가 집값이 많이 오른 7곳을 일컬어 버블 세븐이라고 부른 것은 한 예다. 버블(거품)은 언젠가 꺼진다는 뜻이니, 해당 지역에 대한 반감이 묻어나는 표현이다. 산업자원부는 에너지 절약운동의 이름을 3, 6, 9대책으로 지었다. 당장 실천이 가능한 운동 3가지와 관심을 가지면 실천할 수 있는 6가지를 합쳐 9가지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자는 뜻이다. 이 운동이 성공하면 연간 2조6000억 원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저출산대책을 둘둘 플랜으로 부르기로 했다. 최소한 둘 이상은 낳자는 취지에서다. 재정경제부는 저소득근로자들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근로소득세 보전방안(EITC)의 이름이 너무 어려워 쉬운 이름을 공모하기로 했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 근로자들의 입장에선 EITC라는 어려운 이름이 오히려 자존심을 덜 건드리지 않을까.
김영삼 정부 때도 신경제 100일계획 신경제 5개년계획 등 주요 경제정책에는 어김없이 신()경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름이 무색하게 외환위기를 겪었다. 김대중 정부는 신()지식인을 들고 나왔다. 학력에 관계없이 자신만의 지식과 기술로 성공한 사람을 신지식인으로 인정하고 우대해야 한다는 뜻이었지만 지식인상()을 왜곡시켰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인생도 정책도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라면 이름보다 내용을 채우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책 작명에까지 세금 쓸 일인가.
임 규 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