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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한편이 안내책 수십권보다 생생

Posted September. 30, 200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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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꺼지면 스크린에는 1970년대 한국의 고등학교 교실 장면이 흐른다. 칠판 위로 큼지막하게 걸린 대통령 사진을 보자 외국인 관객들이 소곤소곤 얘기를 나눈다. 그들에게는 생소한 30여 년 전 한국의 교실 풍경. 관객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높아진 한국 영화의 위상을 알고 싶다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 산하 자선단체 유럽-코리아재단이 마련하고 있는 시네 카페 행사는 소리 소문 없이 외국인들 사이에 한국영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최근에 열린 28일 행사에서는 공공의 적 2가 상영됐다. 기기 작동 실수로 몇 차례 필름이 끊겼지만 불평하는 관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격주 수요일 오전마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래미안문화관에서 열리는 시네 카페는 외국인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관람이 끝나면 점심식사를 하면서 열띤 영화 토론회를 벌인다. 호주 출신으로 세 번째 행사에 참석했다는 크리스 베르코(여) 씨는 호주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는 한국영화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면서 한국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한국 안내 잡지를 여러 권 읽는 것보다 훨씬 생생하게 한국 문화를 아는 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시네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한 유럽-코리아재단은 외국인이 좀 더 쉽게 한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영화 상영 행사를 택했다.

니콜 리세 유럽-코리아재단 이사는 영화 선정 기준에 대해 폭력적이지 않고 영어 자막 수준이 좋은 작품을 고른다면서 김기덕 감독의 예술영화에서부터 강우석 감독의 흥행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시네 카페를 거쳐 간 수십 편의 작품 중 최대 히트작은 할머니와 손자의 교감을 그린 영화 집으로. 올해 초 이 영화가 상영됐을 때 좋은 평을 미리 입수한 외국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리세 이사는 외국인들은 가족애, 부모 공경 등 한국의 독특한 정서가 담긴 영화를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시네 카페가 오전에 열리기 때문에 관객 대부분이 여성. 유럽-코리아재단은 기업인과 학생들을 위해 조만간 저녁에도 시네 카페를 운영할 예정이다. 입장료 1만 원은 경기 부천시에 있는 불우아동 보호시설 모퉁이 쉼터에 전액 기부된다.

공공의 적 2 상영이 끝난 뒤 다음 달 상영 영화로 배용준 주연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소개되자 여성 관객들 사이에 환호성이 터졌다. 역시 한류 스타의 힘은 위대하다.



정미경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