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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산가족 첫 화상상봉

Posted August. 16, 2005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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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좀 보시라요. 어머니를 뵙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요. 어머니 눈 좀 뜨시라요.

15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등 전국 12개 남북이산가족 화상() 상봉장에서는 화상을 통해 50여년 만에 혈육을 만난 이산가족들의 기쁨과 탄식이 교차했다. 비록 손으로 만질 수는 없었지만 남과 북의 혈육은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북받쳐 오열하는 등 실제 대면 상봉에 못지않은 장면을 연출했다.

이날 오전 서울 대한적십자사에 마련된 제2화상 상봉실 금강산마루에서는 59년 만에 북에 남겨 두고 온 두 딸을 만나기 위해 상봉장을 찾은 김매녀(98) 할머니가 건강 악화로 북녘 딸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40년 사망한 황정묵(당시 43세) 씨와 1남 3녀를 둔 김 할머니는 1948년 큰딸 보패(78) 씨와 작은딸 학실(76) 씨를 북에 남겨 두고 월남했다. 그러나 그 길은 김 할머니 가족에게 기나긴 이별의 시작이었다.

김 할머니는 그동안 딸의 생사라도 확인하기 위해 중국을 오가기도 했지만 지난해 뇌중풍(뇌졸중)으로 입원하면서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북녘 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 할머니는 건강에 나쁘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앰뷸런스를 타고 이날 오전 상봉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는 북녘 두 딸의 외침에 잠시 눈을 뜨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고개를 숙여 가족들을 애타게 했다.

김 할머니와 함께 상봉장을 찾은 막내딸 봉숙(69) 씨는 언니들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설레어 계셨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1950년 의용군으로 징병돼 가족과 생이별한 북측의 정병연(73) 씨도 이날 55년 만에 여동생 영애(69) 씨와 영임(67) 씨, 남동생 인걸(63) 씨를 만났다.

희끗희끗한 백발에 보청기를 낀 정 씨가 화면에 나타나자 영애 씨는 오빠, 오빠 맞네. 우리 언제 만나냐며 절규했다.

정 씨는 남녘 동생들의 이름을 부르고 누가 우리 집안을 이렇게 갈라 놓았느냐며 55년의 긴 이별을 원통해했다.

상봉 가족들은 헤어져 있던 55년간의 세월을 이어보려는 듯 사진을 수십 장씩 가지고 나와 서로에게 한 장 한 장 보여 주며 얘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이날 오전 부산에서 생면부지의 손자들을 화상으로 만난 이을선(94) 할머니는 625 때 헤어진 작은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 안타깝지만 아들을 꼭 빼닮은 손자들이 건강한 것을 보니 기쁘다고 밝혔다.

북측 손자들이 작은아들의 사진 등 북측 가족 모습을 담은 4, 5장의 사진을 내보이자 이 할머니는 아들아를 외치며 모니터로 다가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에서 첫 번째 상봉 가족으로 참석한 변석현(96) 씨 가족은 상봉 시간인 오전 8시보다 2시간이나 일찍 상봉장에 나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변 씨는 북의 두 아들 영철(61) 씨와 영창(57) 씨로부터 큰절을 받고는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북에서 학교 졸업하고 기술자가 됐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안도했다.

이번 첫 화상 상봉을 통해 남측에서는 상봉자 20명과 그 동반 가족 57명이 북에 있는 가족 50명을, 북측에서는 상봉자 20명이 남측 가족 79명을 각각 상봉해 총 226명이 참여했다.

이날 상봉행사에서 최고령자인 이령(100) 씨는 북에 있는 손자 서강훈(47) 씨와 손자며느리를, 또 최연소자인 북측의 이기서(70) 씨는 남측 동생 이기설(61) 씨를 만났다.



문병기 유재동 weappon@donga.com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