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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수근 화백

Posted January. 27, 200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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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박수근(19141965)이다. 그가 모노크롬에 가까운 단조로운 색조로 그려낸 벌거벗은 나무와 장바구니를 든 아낙, 고무신을 신고 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단발머리 언니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적 형상()의 원형()을 깨닫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초등학교 학력의 화가는 51년의 생애에 350점가량의 작품을 남겼다. 박수근 작품의 독특한 마티에르는 한국적 풍정()의 화강암적 본질과 정서를 너무나 닮았다.

생전의 그는 국전()에서 낙선한 적도 있었고 625전쟁 통에는 미군 피엑스(PX매점)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로 간신히 생계를 이을 정도였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작가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은 당시의 박수근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작가는 당시 피엑스의 경리였다. 작품 내용에 비춰 두 사람이 연인관계였을 것이라는 풍문도 있었지만 화가에게는 이미 참한 부인이 있었고 작가는 따로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

생시에 호당 5000원에 불과했던 그의 작품은 현재 엽서 크기 한 점이 1억 원 이상을 호가한다. 엊그제 한 국내 경매에서 그의 3호 크기 노상()이 근현대 미술작품으로는 최고가인 5억2000만 원에 팔렸다. 1980년대 그의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한국의 화상()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자택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월간 신동아 2월호는 박 화백의 장남과 장손이 호주 시드니에서 3대째 화가의 길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한다. 위대한 예술가의 자식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박수근이란 이름 석자는 그들의 자랑이자 멍에였다. 거목() 아래서는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아들과 손자에게는 박 화백의 작품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유작()을 팔아 생활비와 학비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이제 아버지의 벌거벗은 나무들에 옷을 입혀 주고 싶다고 했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