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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강경 4인방 백악관-펜타곤 장악

Posted January. 18, 200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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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재한 강경그룹=럼즈펠드 장관은 1968년 하원의원 시절 27세의 청년 체니를 구두 면접했지만 인상적이지 않다며 낙방시켰다. 그러나 얼마 후 체니 씨의 서면보고서를 읽어본 뒤 보좌관으로 채용했다. 미국 공화당 안보정책의 틀을 만든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럼즈펠드 장관은 1975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 대통령비서실장 자리를 체니 씨에게 물려줬다. 당시 워싱턴에서 도전적 럼즈펠드-소리 없는 해결사 체니는 드림팀으로 통했다. 2001년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있던 럼즈펠드 씨를 26년 만에 다시 정부로 부른 것도 파월 장관의 명성을 제어하려던 체니 부통령의 작품이다.

체니 부통령은 30대 후반 하원의원 시절 워싱턴포스트가 중도적이란 인물평을 내자 보수적이라고 써 달라며 정정보도를 요청할 정도로 확신에 찬 보수 인사다.

울포위츠 부장관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그룹의 간판 이론가다. 나도 옳지만, 너도 옳을 수 있다는 리버럴리스트들의 상대론을 부인하며 미국식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확신하고 있다. 오전 8시오후 4시, 오후 4시밤 12시까지 일하는 여비서를 따로 둘 정도로 일에 묻혀 산다.

국방부에서는 울포위츠의 방에 가면 서류더미 때문에 책상에 앉은 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로 그는 느리지만 통찰력 있는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1970년대 이후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데탕트 및 세력균형 외교에 반대했다.

교환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14세 때 이스라엘에서 한동안 지냈고 친누나가 이스라엘인과 결혼해 그곳에 정착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중동 문제를 본다는 지적도 받는다.

숨겨진 강경파 리비 비서실장은 울포위츠 부장관의 예일대 제자. 법률서류를 뒤적이는 변호사 생활에 싫증을 내던 1981년, 스승인 울포위츠 부장관이 큰일을 하자며 공화당 정부에 끌어들였다. 울포위츠 부장관과 리비 실장은 매년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생일에 모임을 갖는다. 두 사람은 누구도 히틀러에 맞서려 하지 않을 때 처칠만이 분연히 일어섰다며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자신들의 운명을 처칠 전 총리에 비유하곤 한다.

라이스와 졸릭의 국무부=미혼인 라이스 내정자는 부시 대통령을 근무 외 시간까지 밀착 보좌해 최측근 인사로 통한다. 그는 1999년 울포위츠 부장관과 함께 벌컨(Vulcan)그룹을 이끌었다. 부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참모들 모임이다.

불과 대장장이의 신인 불카누스를 뜻하는 벌컨이라는 그룹 이름에서 보듯 라이스 내정자는 단호한 면모가 눈에 띈다.

로버트 졸릭 국무부 부장관 내정자는 벌컨 8인방 중 한 사람. 뉴욕타임스는 17일 경제통인 졸릭의 부장관 기용은 라이스 내정자의 관심 영역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졸릭 내정자는 2000년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의 힘을 존중하면서도 주변국의 역사관과 국가 이익을 감안해야 한다 동맹국과 연합국은 너무 미국에 의존하지 말고 자기 능력에 걸맞은 부담을 해야 한다 국제관계는 멋진 연설로 해결될 수 없으며 합당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통 전진 배치=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의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내정과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의 백악관 입성은 한국을 알아야 한다는 2기 행정부의 속내를 읽을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한국통인 국방부 롤리스 부차관보도 유임됐다. 롤리스 부차관보-마이클 피니건 한국과장-스콧 피니 북한과장으로 이어지는 국방부 한국팀은 최근 2년간 인사이동이 전혀 없을 정도로 응집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롤리스팀의 발언권에 주목하라고 말한 바 있다.



김승련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