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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버지 뭐 하시니?

Posted December. 24, 200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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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딸을 둔 엄마 얘기다.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사실을 알고 제일 먼저 물은 게 걔 공부 잘하니?였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춰 캐물었다. 걔네 아빠 뭐 하시니? 딸은 그걸 알아서 뭐 하느냐며 질색을 하더란다. 중년의 엄마는 스스로도 겸연쩍었다고 했다. 나도 어릴 때 선생님이나 친구 엄마들이 아버지 뭐 하시니? 하고 묻는 걸 이해 못했다. 그런데 나도 똑같이 됐다니.

부모의 직업과 학력만큼 그 사람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짐작하게 하는 척도()도 흔치 않다. 서울 강남의 학부모 세대엔 대졸 이상 고학력자가 서울 평균치보다 두 배 이상 많고, 그들 자녀가 서울에 있는 4년제 이상 대학에 다니는 비율이 서울 평균(37.4%)을 크게 웃돈다는 박사학위 논문도 있다. 미국에서도 전문직 부모를 두면 실력이 좀 처져도 전문직을 가질 기회가 노동자 자녀보다 20배 높다는 연구가 있다. 유전자 때문이든, 환경 때문이든 부모덕은 무시 못 하는 셈이다.

부모는 걸림돌도, 디딤돌도 될 수 있다. 부시 왕조의 계승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늘 반듯했던 아버지에 비해 한때 타락한 아들로 비교됐던 인물이다. 긴 역사 속에서 성공한 대통령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개인사로 보면 아버지 콤플렉스로 인해 좌절-성공-그리고 재집권한 것으로 평가된다. 자랑스럽지 않은 부모가 되레 득()되는 것도 가능하다.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 씨는 행복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작가가 못 됐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사교육이 기승을 부린대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결국 자기하기 나름 아니던가.

대학입학원서에 수험생 부모의 직업 직장 학력 등을 적도록 해 온 것은 지나친 참견이었다. 입학한 다음에야 교육적 차원에서, 제대로 지도하기 위해 가정환경을 알 필요가 있을 수 있지만 면접 때 선입견을 줄 가능성이 있는 정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불합리한 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에 따라 이를 없애도록 권고한 것은 뒤늦게나마 잘한 일이다. 아버지 뭐 하시니? 묻기 전에 스스로 묻는 게 낫다. 지금 나는 뭐하고 있는지를.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