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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외교문서 일제가 강탈

Posted January. 25, 200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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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조약(1876년), 조미조약(1882년), 조독조약(1884년), 조불조약(1886년) 등 구한말 외교문서 원본들이 1910년 6월 조선통감부에 의해 일본 외무성으로 반출됐음을 보여주는 문서 등 1900년 전후의 우리 외교 및 독립운동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문건들이 대거 발견됐다.

이 문건들 중에는 그밖에도 명성황후 시해범들이 일본에 돌아간 뒤 조선의 자객들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은신생활을 했으며 안중근() 의사가 처형된 뒤 연해주 한인들이 그의 잘린 손가락을 모셔 놓고 참배했다는 기록 등 새로운 사실들이 포함돼 있다.

이 문서들은 한일근세사 연구자인 최서면(76) 국제한국연구원장이 94년부터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소장된 사료 5만 책을 일일이 뒤져 찾아냈다. 최 원장은 최근 이 자료들을 모아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소장 한국관계사료목록 18751945를 펴냈다.

1910년 6월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통감이 일본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에게 보낸 공문과 이에 딸린 문서목록에 따르면 고종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된 뒤에도 그 이전의 외교조약문들을 1904년 덕수궁 화재 때 타버렸다며 일본측에 넘기지 않고 감춰오다 1910년 5월 통감부에 빼앗겼고, 통감부는 이를 일본 외무성으로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고종은 이 외교문서들을 가까운 친척인 조남승에게 맡겼고 조남승은 이를 다시 프랑스인인 뮈텔 천주교 서울교구 주교에게 은밀히 맡겼는데, 일본경찰이 다른 일로 조남승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확인해 뮈텔 주교로부터 서류 일체를 압수했다는 것.

최 원장은 당시 일본에 보내진 구한말 외교문서 원본들은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며 일본 내에서 유실됐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최 원장이 이번에 공개한 문건들 가운데 당시 일본 외무성이 국내기관들로부터 접수한 보고서에는 1895년 10월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많은 조선인 자객들이 1897년 11월로 예정된 명성황후의 국장()까지 범인을 처단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라며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이에 따라 시해범들이 은신생활을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조선인 망명자를 포함한 시해 관련자의 본명과 가명, 이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지원 내용 등도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총영사가 보낸 보고서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생 정근()씨가 형이 처형된 뒤 연해주로 망명해 단지동맹원 중 한 사람인 백규삼()을 찾아가 안 의사의 손가락을 받아갔다는 기록도 있다.

이밖에 이번에 확인된 문건들에는 이준 열사의 사망진단서 만주 등지에서 일본 밀정들의 독립운동가 귀순 전향작업 몽골혁명 당시 조선인들의 활약상 순종의 유언 구한말 수도 전기 등 이권의 향방에 대한 기록도 포함돼 있다.

이태진(국사학) 서울대 교수는 지금까지 일본의 외교관계 사료목록으로는 일본이 발간한 일본외교문서 등이 있었으나 한국 관련 사료는 누락된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문건들은 외교사료관의 방대한 자료들 중 제목에 한국 관계라는 표시가 없는 것들까지 모두 읽고 추려낸 것으로 연구자들에게 충실하고 의미있는 가이드북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영아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