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위험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스스로 만든 위험에서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세상이기도 하다.”―울리히 벡 ‘글로벌 위험사회’ 중
과거 사회적 위험은 방재기술이나 보건위생 등의 결핍으로 일어났다. 반면 현대의 위험은 보통 과학기술의 진보로 인한 과잉으로 발생한다. 기후변화 등은 외부요인이 아닌 우리 스스로 만든 위험들이다. 문명으로 인해 오염된 지구는 이제 역으로 문명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위험은 문명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성공해서 일어났기에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과학기술은 확실한 한편 불확실하고, 기존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과학기술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합리적 통제와 제도를 동원할수록 불확실성만 더욱 커질 뿐이다. 이 ‘불확실한 위험’은 불안을 키우는데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대 사회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사회변화의 동력이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전 지구적 불안이 변화를 이끌고 있다. 불안은 이념 차이나 경제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사회 전체를 연대하게 한다. 위험 상황에서 도리어 다같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해방적 파국’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위험을 인식하게 되면 가려져 있던 진실이 드러나고, 성찰을 통해 낡은 세상을 탈바꿈시킬 수 있다. 최악의 전망에서 최선의 길을 찾게 되는 셈이다.
작가 정여울은 “우리의 위험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내가 겪는 위험은 내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이다”라고 했다. 상처의 틈새로 스며드는 세상의 진실이 우리를 단련시켜 더 강하게 아물게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전 지구적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진실이 우리를 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