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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89년만에 좌파정권

Posted July. 03, 2018 08:23,   

Updated July. 03, 201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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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 깊은 부패, 일상화한 강력범죄에 대한 멕시코 국민의 분노가 89년간의 우파 장기집권을 끝냈다.

 멕시코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 좌파 성향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65)가 득표율 53.8%로 압승을 거뒀다. 집권당인 중도 우파 제도혁명당(PRI)의 호세 안토니오 미드 후보는 16% 득표에 그쳤다.

 2006년 이후 3번째로 대권에 도전한 오브라도르는 당선 확실 소식을 전해 들은 뒤 “국민의 지지에 감사를 전한다. 나의 가장 중요한 공약은 부패와 비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멕시코에서 모든 비리를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12월 1일 취임할 예정이다. 오브라도르와 경쟁했던 주요 후보들은 출구조사 발표 직후 패배를 인정했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도 정권 이양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00∼2005년 멕시코시티 시장을 지낸 오브라도르는 모레나(MORENA·국가재건운동), 노동자당(PT) 등 중도 좌파 정당이 규합한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연대가 내세운 후보다. 보수당 PRI는 1929년 창당 후 한 세기 가까이 집권당 자리를 지켜왔다. 2000∼2012년 집권한 국민행동당(PAN)도 우파 보수 정당이다. 그러나 마약 범죄와 부패로 인한 폐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끓어오른 민심의 변혁 요구를 막아낼 수 없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멕시코 대선에서 좌파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수많은 국민들은 희망을 품게 된 반면 소수의 엘리트들은 두려움에 떨게 됐다”고 전했다.

 2006년과 2012년에 이어 세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선 오브라도르는 부정부패 척결, 공공안전부 설립, 군대의 치안 기능 폐지, 독립 검찰청 설립,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추진 등 ‘멕시코 국민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내걸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급여를 절반으로 줄이고 대통령궁 대신 자택에서 거주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브라도르가 압승을 거뒀지만 얼마만큼 실질적 성과를 낼 것인지는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공무원 급여 인상, 노인연금 증액 등에 필요한 자금을 “부패 척결로 확보한 수백억 달러의 예산에서 얻겠다”는 그의 장담을 비판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라우라 친치야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최근 라틴아메리카 거의 모든 나라 국민들이 사회 변화를 바라고 있다”며 “그들은 이상주의를 지지한 것이 아니다.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면 피로감과 강한 실망감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우선주의 성향과 거침없는 언사로 인해 ‘멕시코의 좌파 트럼프’로 불리는 오브라도르는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정립하겠다”고 공언했다. 급한 성격에 정적(政敵)을 잔인하게 닦아세우길 즐기고 언론을 의심하는 성향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흡사하다. 무역, 이민, 국경 장벽 문제 등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빈번히 충돌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함께 만나 일할 날을 고대한다. 양국의 이익을 위해 할 일이 많다”며 오브라도르의 당선을 축하했다.

 한편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멕시코 사상 최대 규모의 선거들이 동시에 치러진 이날 야당 관계자가 괴한 총격에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져 불안한 민생과 치안 상황을 드러냈다. 중서부 미초아칸주 콘테펙에서 오전 6시경 PT 여성당원 플로라 레센디스 곤살레스가 자택에서 피살된 것.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선거 후보 등록이 시작된 지난해 9월부터 정치인 133명이 살해됐다. 피살자 중 48명은 입후보자였다. 희생자 대부분이 자치단체장 후보자 또는 관련자인 까닭에 지역 통제권을 노린 마약 범죄 조직의 소행인 것으로 추정된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 전채은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