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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성욕 양지로 이끈 ‘성혁명가’..플레이보이 창업 휴 헤프너 별세

감춰진 성욕 양지로 이끈 ‘성혁명가’..플레이보이 창업 휴 헤프너 별세

Posted September. 29, 2017 08:37,   

Updated September. 29, 20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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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잡지 ‘플레이보이’를 발행하는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는 창업자인 휴 헤프너가 27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91세.

 20세기 성(性) 혁명의 기수로 불리는 그는 “성에 대한 위선적인 생각을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고 또 그렇게 하는 동안 많은 재미를 본 인물로 기억하기 바란다”는 자신의 묘비 문구를 직접 남겼다. 2003년 플레이보이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공개한 것으로 그의 묘비에 새겨질 예정이다.

 고인의 아들 쿠퍼 헤프너는 “아버지는 언론의 자유, 시민권 및 성적 자유를 옹호하는 사회문화적 움직임의 선봉에 섰다”고 말했다. 그의 부고를 전하며 서양 언론들은 “대중 쾌락주의의 선지자”(타임), “1960년대 성 혁명을 이끈 인물”(로이터) 등으로 평가했다.

 고인은 27세 때인 1953년 친구와 부모에게서 빌린 8000달러로 플레이보이를 창간했다. 당시는 “미국 유부남의 30∼45%, 유부녀의 29.6%가 혼외정사를 경험했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킨제이 보고서’가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때였다. 보고서를 쓴 앨프리드 킨제이가 ‘미국을 타락시킨 악’으로 몰렸을 때 헤프너는 이 보고서에서 남성의 숨은 욕망을 이용해 돈을 벌 사업 아이템을 얻었다.

 극렬한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의 영향으로 보수적 분위기가 팽배하던 1950년대 초반, 플레이보이의 등장은 센세이션이었다. 메릴린 먼로의 누드 사진을 표지에 내건 창간호는 5만 부나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플레이보이의 등장 후 ‘허슬러’ ‘펜트하우스’ 등 노출 수위가 더 높은 성인 잡지가 쏟아져 나왔다.

 1970년대 700만 부 넘게 팔리며 전성기를 보낸 잡지는 이후에도 샤론 스톤, 나오미 캠벨 등 스타들의 누드를 실으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종이 잡지의 영향력은 쇠락했다. 여성 누드 사진을 싣지 않겠다고 선언한 2015년 발행 부수는 80만 부로 떨어졌다.

 하지만 플레이보이의 토끼 모양 로고는 미국 성인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도 미디어업계의 거물이자 성인문화의 ‘아이콘’으로 유명해졌다. 그가 개척한 미국 포르노그래피 산업 규모는 현재 한 해 수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는 수십 년 넘게 대저택에서 20대 여성 모델들을 숙식시키며 직접 키웠고 많은 염문을 남겼다. 몇 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셀 수는 없지만 1000명 이상의 여성과 잠자리를 했다”고 고백했다. 86세 때인 2012년, 그는 60세 연하의 금발 모델 크리스털 해리스와 공식적인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헤프너는 과거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생전 이룩한 가장 자랑스러운 것”에 대한 질문을 받자 “성에 대한 태도와 혼전 성관계의 개념을 바꾼 것”이라고 답했다. NYT는 이날 그의 부고 기사에서 “헤프너와 플레이보이 브랜드는 미국 사회의 편협함으로부터의 탈출구였다”고 평가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