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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출신 아닌 판결성향보고 뽑아야”

“대법관, 출신 아닌 판결성향보고 뽑아야”

Posted June. 28, 2016 07:27,   

Updated June. 28, 201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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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연방대법원을 이끈 얼 워런 전 대법원장(1953∼1969년 재임)은 공화당 출신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지명했다. 그는 대법원장에 오른 뒤 지명권자의 의도와 달리 흑백 분리교육을 철폐하고, ‘미란다 원칙’으로 잘 알려진 피의자 권리보호 제도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오죽했으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 후 “워런을 지명한 것은 인생 최악의 멍청한 실수”라고 했을 정도다.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1981∼2006년 재임)도 공화당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했다. 그러나 그는 고비마다 ‘중도 대법관(median justice)’으로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이처럼 정치적으로 임명되지만 사법적으로 판결하는 사례가 많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미국 연방대법관은 임명 당시에는 대체로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과 정치·사법철학을 공유한다. 그러나 일단 자리에 앉으면 대통령보다는 동료들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기가 6년인 한국과 달리 미국 연방대법관은 종신제다. 이 때문에 미국 정치권에선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한 연방대법관의 지명을 놓고 치열하게 다툰다.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 5명 중 1명 정도가 의회 인사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정도다. 대법관 인사청문회 낙마 사례가 통틀어 한 건뿐인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1991년 미국 연방대법원 두 번째 흑인 출신 대법관 후보인 클래런스 토머스는 청문회장에 섰다. 그런데 당시 그가 성희롱을 했다는 의혹이 공개되면서 미국 사회가 들끓었다. 우리 같으면 당장 후보의 지위에서 물러나야 했겠지만 토머스는 우여곡절 끝에 보수정권의 지원으로 인준을 통과했다. 그 뒤 미국 연방대법원 청문회는 후보자의 개인 신상은 비공개로 하고, 사법정책이나 법리에 대한 질의응답만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국 대법관의 첫 판결 성향 분석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관 다양화의 초점을 ‘출신’이 아니라 ‘개별 식견’으로 옮겨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은 대법관 후보의 출신 고교와 대학, 성별만으로 대법원의 다양화를 주장하는 의견이 강하지만 미국에선 여성, 소수인종 등 배경만으로 판결 성향을 따지지 않는다. 정작 한국에선 이제까지 대법관의 판결 성향이 어떤지에 대한 검증이나 연구가 없는 실정이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