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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50대 학부모 최대 고민은 자녀 학자금 어쩌나

은퇴 50대 학부모 최대 고민은 자녀 학자금 어쩌나

Posted January. 17, 20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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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간 근무했던 직장이었다. 겨울마다 여의도를 휘감던 쌀쌀한 칼바람도, 출근 생각만 하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A 씨(52)에게 여의도는 또 하나의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직원은 증권의 가족

1989년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하고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입사한 증권사 입구에서 처음 마주한 문구다. 정말 그랬다. A 씨와 회사는 진짜 가족처럼 서로를 챙겼다. A 씨는 회사에 열심히 효도했고, 회사도 A 씨를 세세히 챙겼다.

회사가 준 일을 소중히 여기며 성실히 조직생활을 하는 게 미덕이었던 시대. 베이비붐 세대인 A 씨도 그 시대의 교훈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그 교훈을 충실히 지킨 결과는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

정년 연장 앞두고 퇴출 프로그램 가동

2013년 12월 23일. 마지막으로 퇴근 도장을 찍고 여의도 거리로 나왔다. A 씨는 여의도 겨울바람이 그렇게 살을 엘 정도로 차가운지 그때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린 지 24년이지만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회사를 부모처럼 여기고, 정열도 바쳤지만 A 씨를 내보낼 때는 매몰찼다. 퇴직 7개월 전인 2013년 5월 정년 60세 연장법이 개정됐지만 이 제도는 그림의 떡이었다.

나이 많고, 직급 높은 직원들은 무조건 퇴출 프로그램에 가야 한다던데?

2013년 7월 여느 날처럼 출근해 업무 준비를 하던 A 씨는 동료들이 수군거리는 얘기를 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퇴출 프로그램은 희망퇴직을 실시할 때 주는 1억2억 원을 아끼기 위해 회사가 직원에게 스스로 사직서를 내도록 종용하는 제도였다. A 씨를 포함해 퇴출 프로그램 대상자는 모두 20명. 그들이 모두 처음 만난 날, 다들 죄수처럼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떻게 영업할 건지 보고서를 내야 했다. 일종의 반성문이었다. 계좌유치 등으로 월 2000만 원씩 수익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목표량도 떨어졌다. 퇴출 프로그램 책임자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야근이라도 하라며 오후 10시까지 A 씨를 사무실에 남겼다.

이를 악물고 버텼죠. 정년퇴직은 바라지도 않았어요. 다만 애들 대학등록금 때문에라도 최소 3, 4년은 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날마다 사표를 쓰고 싶었지만 그렇게 버텼어요.

끝까지 버틴 직원에게는 최후통첩이 떨어졌다. 2주마다 지점을 옮겨 다니도록 한 것. 여기서 나가떨어진 직원에게는 대기발령을 냈고, 책상을 없애고 직위도 박탈했다. 결국 A 씨도 2013년 12월 스스로 사직서를 냈다. 물론 명예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퇴직 이후 평생 몸을 바친 직장에서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에 뒷목이 땅기고 하루 종일 머리가 멍했다. 요즘도 소화제를 끼고 산다. 악몽도 많이 꾼다. 스트레스가 겹쳐 고혈압 판정까지 받아 약도 먹고 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장남인 그는 주저앉을 여유도 없었다. 보험설계사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한 달에 150만 원을 벌기도 벅차다. 월급이 증권사를 다닐 때의 4분의 1도 되지 않지만 아이들 학자금을 대려면 어쩔 수 없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지금도 그는 보험상품을 팔기 위해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사장이 빗자루질 하면 해고 신호

경기 구리시의 한 중소유통업체서 일하는 이모 씨(52)는 하루하루 해고의 불안 속에서 일한다. 한때 가구점을 운영하며 잘나가는 사장님으로 불렸던 이 씨는 사업이 기울면서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을 해왔다. 당시 중고등학생이었던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일자리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전체 직원 수가 10명인 이 씨의 회사는 2017년부터 정년연장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고참급인 이 씨는 늘 정리해고의 부담에 시달린다고 했다.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사업실적에 따라 한두 명은 쉽게 해고하고 또 새로 채용하는 탓이다.

근속 연수가 길다 보니 월급을 많이 받는 내가 늘 정리해고 우선순위에 오르는 거죠.

사장의 빗자루질 하나 예삿일로 보이지 않는다. 직원을 자를 일이 있으면 사장이 작업장에서 빗자루질을 시작하기 때문. 이때는 모든 직원이 하던 일을 멈추고 같이 청소를 해야 한다. 해고의 신호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해고 압박을 견뎌내는 방법은 일평생을 그래왔듯 그저 열심히 일하며 버티는 것뿐이다. 비교적 나이가 젊은 직원들은 손쉽게 일을 그만두기도 하지만 두 아들과 아내를 책임져야 하는 이 씨에게는 그런 생각조차 사치다. 눈칫밥 먹는 생활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 씨는 그저 5년만 더 회사에 다니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다. 두 아들이 장가갈 때 각각 작은 전셋집 마련할 목돈이라도 쥐여 보내기 위해서다.

철밥통 교직원도 이제는 옛말

고용 안정성이 높아 철밥통에 비유되는 교직원 사회에서도 베이비부머들은 코너에 몰려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직원으로 28년째 근무 중인 김모 씨(53)는 정년 연장 시행이 다가오면서 학교 측이 다양한 수단으로 퇴직을 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학교를 떠난 교직원 8명은 모두 김 씨와 같은 베이비부머였다. 팀장이라는 직급을 주고 소속 팀원을 주지 않는 식으로 퇴출됐다. 김 씨는 젊은 직원들이 윗사람에게 대놓고 나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청년 일자리만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어떨 때는 나이 많은 사람은 나가라는 압박처럼 느껴졌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를 샌드위치 세대라고 표현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베이비부머는 여전히 부모를 부양하면서 자녀까지 책임져야 하는 세대라며 나이가 들어도 쉬지 못하고, 모은 돈이 없어 생활이 어려우니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 사회문제화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달리고 있다. 이제 산업화의 주역은 아닐지라도, 한 가정의 주역으로 버텨내기 위해서.

5면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