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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사진찍을땐 웃지말라고 지침"

Posted June. 11, 201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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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저 궁금했을지 모른다. 만일 나를 겁주려는 것이었다면 그는 실패했다. 나는 브리핑에 집중했고 동행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즐거운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인 2010년 7월 21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군사정전위원회 건물을 방문했던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창문을 통해 자신을 노려보는 북한 병사와의 조우를 이렇게 회고했다. 10일(현지 시간) 발매된 회고록 어려운 결정에서 그는 4년 남짓 재임하는 동안 한반도에 관한 경험의 일부분을 소개했다.

비무장지대(DMZ)를 바라보면서 이 좁은 선(군사분계선) 하나가 세상을 극적으로 다르게 갈라놓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가난과 독재에서 번영과 민주주의로 변신한 빛나는 진전의 사례가 됐고 북한은 여전히 공포와 굶주림의 땅이었다.

회고록에는 북한에 억류됐던 두 미국 여기자, 유나 리와 로라 링을 석방하기 위해 자신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직접 평양에 보내는 과정도 생생하게 담겼다. 당시 북한은 석방의 명분을 찾기 위해 남편의 방문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참모 일부는 이를 반대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일부는 2008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남편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지만 대부분은 북한의 나쁜 행동에 보상하는 것이 동맹국들의 우려를 낳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밀어붙였고 사전 회의에서 남편에게 공식 사진 촬영 때 웃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소개했다. 임무 수행에 성공한 남편은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북한인과의 만남에 대해 마치 제임스 본드 영화의 오디션을 보러 간 것 같았다고 농담했다고 적었다.

회고록은 북한의 3대 세습 체제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화 가능성에 대해선 묘한 여운을 남겼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유야무야된 것은 2001년 집권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악의 축 발언 등으로 전임자인 남편의 정책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자 두 명을 데리고 나온 남편은 우리가 적당한 보상을 제시한다면 적어도 어떤 지점에서는 북한도 긍정적으로 반응한다고 믿었다는 대목도 있다.

2012년 5월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 변호사 망명에 헤럴드 고(고홍주) 당시 국무부 법률고문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을, 외교관이던 고 씨의 아버지 고광림 박사가 516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가족사와 연관지어 설명한 대목도 흥미롭다. 그러나 회고록에는 오바마 행정부 1기의 한반도 정책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이 단 한 건도 공개되지 않았다. 특히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미국이 한반도 국지전 발생을 우려해 북한과 2012년 229합의로 이어지는 대화를 추진한 대목이나 이명박 정부의 강경파와 논쟁을 벌인 과정에 대한 언급도 일절 없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