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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의 아픔

Posted April. 22, 2014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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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도중 독일군 장교로부터 아들과 딸 중 한 명은 가스실로 보내고 한 명은 살려줄 테니 선택하라는 얘기를 듣는다. 아니면 둘 다 죽이겠다는 말에 소피는 딸을 가스실로 보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으로 간 소피는 유대인 생물학자와 가까워지지만 그는 가끔씩 이성을 잃으면 어떻게 수용소에서 살아올 수 있었느냐며 소피에게 욕설을 해 댄다.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설을 원작으로 1982년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피의 선택은 참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뒤 자책과 고통에 시달리는 여성의 비극적 삶을 다뤘다.

1960년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 생존자들의 심리 치료를 맡았던 전문가들은 이들이 오히려 스스로를 책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슷한 증상이 전쟁, 자연재난, 테러, 대형사고의 생존자와 비상시 투입됐던 구조대원, 의료진에게서도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은 죽고 자신만 살아남은 것과, 위기 상황에서 무력했던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며 우울증 악몽 대인기피 등의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생존자의 죄책감(Survivors guilt) 증후군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에서 살아남은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해 4월 8일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선 퇴원한 생존 장병 39명이 실종자 가족 59명을 만났다. 희생자 가족들은 장병들을 자신의 아들인 양 끌어안고 통곡하면서도 살아와 줘서 고맙다고 다독거렸다. 생때같은 아들은 돌아오지 못했지만 동고동락했던 동료의 생환에서 그나마 위로를 얻으려 했다.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서 구조된 174명 가운데 상당수가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구조된 후 목숨을 끊은 강민규 안산 단원고 교감도 사랑하는 제자들이 참변을 당한 것에 대한 자책이 컸을 것이다. 생존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심리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 실종자들을 생각하면 비통함을 떨칠 수 없지만 기적적으로 생환한 승객들은 그 자체로 격려를 받아 마땅하다.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