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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날 버려도 여기선 영웅게임으로 도피한 어른들

사회가 날 버려도 여기선 영웅게임으로 도피한 어른들

Posted April. 17, 2014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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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구에 사는 주부 A 씨(34)는 온라인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만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그의 남편이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푼다며 스타크래프트에 빠져들면서 퇴근 후엔 식사도 않고 외동딸 얼굴조차 보지 않은 채 컴퓨터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남편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투기도, 컴퓨터를 없애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이웃들이 좋은 회사 다니는 남편 둬서 좋겠다고 할 때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사이버 공간에 매달리는 어른의 한 단면이다.

게임 안에 나만의 공간이 있다.

지난달 7일 경북 구미에서 게임을 하러 가야 하는데 자지 않았다는 이유로 28개월 된 아들을 살해한 정모 씨(22)의 사건 이후 청소년들의 주된 문제였던 게임 중독 현상이 성인과 부모 세대에까지 확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16일 새벽 동아일보 취재팀이 서울 시내 PC방 6곳을 방문해 보니 밤 1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많은 성인이 게임에 심취해 있었다.

구로구 구로동의 한 PC방에 있던 정모 씨(36)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게임에 매달렸다고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에 실패해 게임으로 시간을 보낸다. 말수가 적고 붙임성도 없던 나에게 게임은 유일하게 주위에서 인정받는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신촌동 PC방의 한 대학생(23)은 나 스스로 중독됐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게임을 하는 순간만큼은 공부나 취업 같은 고민을 잊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가정과 회사에서 소외된 중장년층 남성도 게임 중독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 상담사는 40, 50대의 경우 게임 공간에서 가정과 회사의 소외를 극복하려는 사례가 많았다며 지난해 4월경 센터를 찾은 한 50대 대기업 퇴직자는 하루 종일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을 하며 자녀들에게도 자신의 온라인상 레벨에 대해 자랑하다 폭력까지 행사했다고 말했다.

게임 공간으로의 도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달 발표한 2013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20세 이상 성인 중독 위험군 비율은 5.9%, 144만여 명에 달했다. 8만9000명으로 집계된 50대 중독 위험군은 이번에 최초로 조사된 수치다. 정보화진흥원은 중장년층의 인터넷 중독 위험성 확대를 반영해 2010년 이전까지 만 39세, 2011년 만 29세, 2013년 만 54세로 조사 대상 연령을 높여 왔다.

성인들이 주로 빠져드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특성은 남들에게 즉각적으로 성취감이 공개되고 게임상 동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전문가들은 성인 게임 중독 문제의 특징적인 원인으로 성인 사회화의 실패를 꼽았다. 학업 스트레스 해소가 주된 원인인 청소년 게임 중독과 달리 성인의 경우 결혼 및 가정생활로의 정상적인 이행 실패 대학이나 직장 등 사회 활동에서의 부적응이 게임 공간으로의 도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구미에서 두 살배기 아들을 살해한 정 씨의 경우 두 가지 요건에 모두 해당됐다. 그는 고등학생 때 만난 아내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지만 아내가 공장 기숙사에 들어간 뒤 혼자 게임으로 하루를 보내는 등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이어가지 못했고 직업도 없이 사회화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였다.

김형근 서울중독심리연구소 소장은 20대는 취업 실패와 적응 불안, 40, 50대는 진급 누락이나 가정 내 역할 실패 등이 작용한다며 세부적인 원인은 다르겠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적으로 뒤처진 자신에 대한 괴로움을 게임을 통해 벗어나려는 양상은 연령대별로 동일하다고 분석했다.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