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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청, 미대사관 나와 베이징 병원으로

Posted May. 03, 20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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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각장애 인권운동가 천광청() 변호사가 2일 자진해서 베이징() 주중미국대사관을 떠난 사실이 알려지자 그 배경과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사건의 향후 전개 방식은 경우에 따라 미-중 관계 변화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중국 체류로 일단 가닥

지난달 26일 미국대사관에 들어간 천 변호사는 당초 지인들을 통해 미국 망명 대신 중국 체류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1일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천 씨의 탈출을 도운 인권운동가 후자()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천 변호사가 중국에 남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긴 하지만 떠날 수밖에 없다면 망명이 아니라 병간호나 친지 방문 등의 명분으로 미국으로 가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중국원조협회(China Aid)의 밥 푸 대표도 미-중간에 천 씨의 미국행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일 천 씨가 자의로 미국대사관을 떠난 것은 그간 거론됐던 천 씨의 진로에 대한 시나리오가 하루 만에 급반전됐음을 시사하고 있다.

천 씨가 미국대사관을 나선 구체적인 배경은 명확치 않다. 현재로선 본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가 가택연금을 당했던 산둥() 성 자택을 탈출한 목적은 미국 망명이 아닌 중국의 인권 상황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이 과정에서 다시 체포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미국의 보호를 택했다는 것. 이 때문에 천 씨는 처음부터 미국 망명설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러 경로를 통한 중국의 설득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중국은 베이징을 방문한 커트 캠벨 미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이 문제를 두고 깊은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천 씨의 미국행을 저지할 수 있는 카드를 미국에 제시했다는 관측이다.

이번 사건이 천 씨의 중국 체류로 마무리될지 여부도 현재로선 불확실하다. 미-중 양국이 협의를 통해 일단 천 씨가 자진해서 미국대사관을 나오는 모양새를 취하되 나중에 중국 정부가 그를 국외추방 혹은 신병치료의 형식을 통해 미국이나 제3국으로 내보내기로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중 관계 급랭인가, 안정인가

천 씨 사건이 국제적인 주목을 끈 이유는 미-중 간 역학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새로운 변수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응만 놓고 보면 미국의 완패로 볼 수 있다. 류웨이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미국의 반성 책임자 처벌 비정상적 방법 등을 거론하며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미국을 비난했다. 발언 내용만 보면 천 씨가 미국으로 몰래 떠나버린 뒤에나 나올 수 있을법한 반응 일색이었다.

특히 중국이 책임자 처벌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게리 로크 주중미국대사의 교체까지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류 대변인이 주베이징 미국대사관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중국 공민 천광청을 대사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중국 당국은 후자 씨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로크 대사를 언제 만났는지, 누가 배석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고 한다. 로크 대사는 천 씨 사건 이전에도 중국 내 인권단체들을 정기적으로 만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국 대사 교체 요구는 국가간 외교 관계를 단절하기 직전에 취할 수 있는 극단적인 대응방식이어서 중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의 페림 클라인 아시아 담당 분석가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은 이미 1989년의 중국이 아니다. 거대한 경제력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1989년 당시의 중국이란 톈안먼() 사태로 주중미대사관에 피신했던 반체제 물리학자 팡리즈()씨를 미국에 넘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뜻한다. 23년 전과 달리 중국의 힘에 미국이 굴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은 명분을, 미국은 실리를 취하는 선택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여론이 잠잠해질 때를 기다려 천 씨의 미국행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중국이 미국에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경제와 정치, 군사 영역에서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 대신 전략적인 균형을 유지하길 원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 하나로 양국 관계를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즉 겉으로만 미국에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을 뿐 물밑에서는 천 씨에 대한 확실한 신변보장을 해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3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연례 미중 전략 및 경제대화 참석을 위해 2일 베이징을 방문했다.



고기정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