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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 선거등록 오늘 마감인데 참여율 4.7% 불과 (일)

재외국민 선거등록 오늘 마감인데 참여율 4.7% 불과 (일)

Posted February. 11, 2012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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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재일교포 1세인 박진선 할아버지(82)가 도쿄에 있는 주일 한국대사관을 찾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등록을 위해서였다. 기차를 3번씩이나 갈아타고 2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대한국민 국민으로서 생애처음으로 한 표를 행사한다는 마음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박 씨는 끝내 투표권을 얻지 못했다. 박 씨와 같은 재외선거인이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여권을 가지고 직접 해외 공관에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박 씨의 여권은 이미 기한이 만료된 지 3년이 넘어버렸다. 박 씨는 여권을 새로 발급받는데 5500엔(약 8만2500원)을 내야한다는 말에 고개를 떨궈야 했다. 마지막이 될 지도모르는 단 한번의 투표를 위해 5500억엔은 너무 부담스럽다고 했다.

재외국민선거 등록율이 결국 5%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외 부재자가 아닌 재일교포와 같은 순수 재외선거인의 등록률은 1%대에 그쳤다. 재외국민 참정권 확대라는 취지가 퇴색된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재외국민의 투표율이 등록률의 60%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재외국민 전체 유권자 223만여 명 중 6만7000여 명만이 투표에 참여할 것이란 얘기다. 당초 예상과 달리 재외국민선거가 총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투표율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재외선거에는 지난해 쓴 80억 원을 포함해 293억 원이 들어간다. 선거물품을 해외 공관으로 보내고 투표함을 다시 국내로 들여오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6만7000명이 투표하면 1표당 투입 예산은 43만 원이 넘는다. 국내 1표당 투입 예산(1만2000원)의 36배가 들어가는 셈이다.

재외국민선거가 무늬만 선거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는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가장 큰 문제는 재외선거 등록을 하려면 공관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 한국에 주소가 남아있는 국외부재자는 우편으로 비교적 손쉽게 투표 신청이 가능하지만 재외선거인은 해외 공관을 직접 방문해 유권자 등록을 해야하고 투표 당일 또 공관에 가야한다. 반면 미국과 일본 중국의 투표신청을 받는 해외공관은 각각 12개 10개 9개에 불과하다.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의 한인 밀집지역인 센터빌에 살고 있는 C씨는 재외국민 선거 등록을 포기했다. 한인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한 있는 그는 부동산중개업에다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 투표등록소인 워싱턴총영사관까지는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4월 총선에서 투표하려면 등록할 때 뿐 아니라 투표일에도 총영사관을 방문해야 돼 투표를 하지 않기로 했다. C씨는 영주권을 갖고 있는 사람은 국회의원 투표는 하지 못하고 정당만 찍을 수 있는데 이틀을 낭비하면서까지 투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처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도 등록을 하지 않는데 총영사관에서 34시간씩 걸리는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누가 투표하러 두 번이나 영사관을 찾겠느냐고 반문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의 김기봉 참사관은 재일교포와 같은 재외선거인이 많은데다 고령자가 대부분인 일본의 경우는 신청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재외선거인보다 국외부재자가 많고 상대적으로 한 지역에 몰려있는 나라의 경우 투표신청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또 모든 서류가 한글로만 돼 있어 한글을 모르면 투표할 수 없도록 돼 있는 것도 문제다.

영주권자와 달리 우편이나 대리인을 통해 유권자 등록이 가능한 국외부재자의 경우 개인 정보 유출을 걱정해 등록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LA재외선거관리위원회는 국외부재자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아르바이트 대학생과 유권자단체 관계자로부터 국외부재자신고서를 접수받았지만 개인정보 유출을 염려해 실적은 저조했다. 신상 정보가 모두 적힌 신고서와 여권 사본까지 내야 하기 때문에 대리인을 통한 서류 제출을 꺼린 것이다.

전반적으로 저조한 투표신청률 속에서도 상하이는 전체 유권자 3만2093명 중 17.91%인 5749명(10일 오전 8시 현재)이 등록을 마쳐 세계 공관 중 등록률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전체 평균 등록률보다 4배 가량 높은 수치다. 상하이 총영사관에 파견된 중앙선관위 박경우 선거관은 상하이한인회를 비롯해 인근 19개 지역한국상회와 상하이총영사관이 긴밀히 협력했다며 특히 한인단체장과 유학생, 주부 등이 참여해 만든 재외국민선거 상하이 공명선거추진단의 활약이 주요했다고 말했다.

재외국민선거의 저조한 투표율은 사전에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해외국민투표가 각 정당에 미칠 파장을 감안해 철저히 이해득실을 따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관위는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선관위는 지난해 4월 공관 직원들이 공관에서 먼 지역을 돌아다니며 재외선거 등록 신청을 받자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냈다. 한나라당 안상수 전 대표도 대표 시절인 2010년 10월 공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우편이나 인터넷을 통해 등록 신청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이 반대하면서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재외국민선거의 투표율이 높으면 여당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선관위가 제안한 제한적 우편투표 도입도 무산됐다. 재외공관이 없어 투표를 할 수 없거나 파병군인들의 편의를 봐주자는 취지였으나 투표의 공정성이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대만에 거주하는 재외국민 6500명을 포함해 8000여 명은 아예 투표권을 박탈당했다. 표 계산만 앞선 여야가 재외국민선거의 투표율을 낮추는데 합심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선관위는 선거 때마다 등록신청을 받아 선거인명부를 만드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시민권자를 대상으로 영구명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여야가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여야가 쉽게 투표할 수 있는 방법은 막아 놓고 애꿎은 교포사회만 들쑤셔 놓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누리당은 재외국민의 표심을 잡기 위해 2010년 재외국민협력위원회를 만드는 등 4개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에는 세계한인민주회의가 구성돼 있다.



김창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