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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싸움게임 하다 갑자기 살인충동 들었다 (일)

칼싸움게임 하다 갑자기 살인충동 들었다 (일)

Posted December. 18, 2010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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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에서처럼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노상에서 귀가하던 시민을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은 게임 중독에 빠진 미국 명문대 유학생 출신의 묻지마 살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6일 유력 용의자로 서초경찰서에 체포된 박모 씨(23)는 경찰조사에서 5일 오전까지 밤새 칼싸움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밖에 나가 처음 만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은 살인 충동이 들었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게임 중독이 부른 살인

17일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박 씨는 범행 당일인 5일 밤부터 6일 새벽까지 밤을 새워가며 플레이스테이션2의 폭력적인 격투 게임을 하던 중 오전 6시 30분 흥분 상태에서 부엌에 있던 흉기를 옷소매에 숨기고 집 밖으로 나왔다. 박 씨는 마침 집 앞을 지나가던 노인과 피해자 김모 씨(26)를 발견하고는 이들을 따라가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지는 김 씨를 범행 대상으로 삼고 아파트 입구 근처까지 쫓아가 흉기로 김 씨의 등을 한 차례 찔렀다. 박 씨는 피를 흘리며 도망가는 김 씨를 쫓아가 옆구리와 허벅지도 찔렀다. 김 씨는 흉기에 찔린 뒤 계속 쫓아오는 박 씨를 피해 범행 현장에서 200m가량 떨어진 잠원동 천주교 교회 앞까지 도망쳤다. 오전 6시 42분경 김 씨는 잠원동교회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교회 관계자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박 씨는 김 씨가 계속 도망가자 추적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수사전담팀을 편성해 박 씨의 휴대전화 통화 목록을 분석하고 주변 인물들을 탐문했으나 아무런 원한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다. 동기가 없는 이른바 묻지마 살인이라고 판단한 경찰은 범행 장소 인근 폐쇄회로(CC)TV 1777대와 6개 노선버스 CCTV를 정밀 분석했다. 경찰은 범인이 머리를 삭발하고, 특정 브랜드의 운동화를 착용한 점 등을 근거로 탐문 수사에 나서 박 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박 씨는 당초 경찰이 출두를 요구하자 증거를 대라며 거부했고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에서 검거했다. 박 씨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집에서 깨끗이 닦은 뒤 부엌에 다시 갖다 놓아 가족들은 범행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고교 때 우수생, 미국 유학 적응 못해

경찰 조사 결과 박 씨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고교에 다닐 때 전교 10등까지 할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김 씨의 고교 때 교사들은 평소에도 말이 없고 조용한 학생이었다며 나무라면 크게 주눅 들곤 했던 점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 직후 미국 뉴욕의 한 주립대 심리학과로 유학을 떠난 김 씨는 학교생활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공부를 아무리 해도 F학점만 나오는 등 성적이 좋지 않아 자퇴를 결심했다며 3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고 후회스러운 마음뿐이라고 진술했다. 올해 7월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한 박 씨는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면서 하는 일 없이 방 안에서만 지내며 폭력성 강한 게임을 즐겨왔다.

피해자 김 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살인범이 검거됐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그는 아들은 누구에게 원한을 살 사람이 아니었다며 외아들이 이유도 없이 죽었다니 더 허탈하고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김 씨는 사망하기 두 달 전 초등학교 동창들과 힘을 합쳐 컴퓨터 사업을 시작했다. 이날도 집 인근 사무실에서 밤새 일을 하다가 새벽녘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와 박 씨 집이 70m가량 떨어져 있다며 이웃사촌이 묻지마 살인의 범인과 희생양이 됐다고 말했다.



김지현 장관석 jhk85@donga.com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