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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데 왜 자꾸 눈물이

Posted May. 29, 2007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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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자신이 벙거지라고 부르는 모자다.

햇볕이 강렬할 때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늘 쓰고 다니지만 내성적인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른 선수와 불필요하게 시선을 마주치지 않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깊숙한 모자 속에 감춰진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하도 우느라 다른 동료 한국 선수들이 축하를 위해 물과 음료수를 뿌리려고 달려드는 것도 모른 채 서 있다 몸이 흠뻑 젖었다.

첫 우승은 그만큼 감격스러웠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데뷔 5년 만에 첫 승을 거둔 김영(27).

그는 28일 미국 뉴욕 주 코닝CC(파72)에서 끝난 코닝클래식에서 합계 20언더파 268타로 우승했다. 국내 대회에서 5승을 올렸지만 LPGA투어에서는 103개 대회 만에 맛본 황홀한 첫 경험이었다.

오랜 세월 정상을 꿈꿔 온 그는 사실 최근 2년 연속 불참했던 이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 없었다. 페어웨이가 좁아 장타자인 나와는 잘 맞지 않거든요.

연습장도 좁아 불편하고 벌레가 많은 데다 호텔 방값도 비싸서였지만 당초 예정된 투어 스케줄이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나섰다.

1, 2라운드에서 강호 폴라 크리머(미국), 우승 경험이 있는 장정(기업은행)과 같은 조로 맞붙게 돼 망신이나 당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는데 12언더파를 치며 덜컥 선두권에 나섰다.

최종 4라운드에서는 8, 9번 홀 연속 보기로 위기를 맞았지만 마지막 5개 홀에서 버디 2개를 잡는 뒷심을 보였고 우승 경쟁을 벌인 김미현과 크리머가 자멸하는 행운까지 따른 끝에 그토록 원하던 정상에 올랐다.

또래보다 키가 컸던 그는 춘천 봉의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농구선수를 하다 그만둔 뒤 아버지(김정찬 씨)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다. 강원체고 시절 고교 최강이던 한희원을 꺾고 우승한 적도 있으며 1997년 일본 최고 권위의 일본문부대신배에서 정상에 오른 유망주였다.

1998년 프로 데뷔 후 1999년 한국여자오픈 챔피언에 등극해 스타 탄생을 알렸다. 당시 박세리, 낸시 로페즈 등을 꺾는 장면을 유심히 지켜본 신세계 오너의 관심을 받은 끝에 그해 말 신세계와 연간 1억2000만 원의 파격적인 조건에 계약했다. 2001년 LPGA 2부 투어와 이듬해 Q스쿨을 거쳐 2003년 LPGA투어에 입성할 때만 해도 엘리트 코스만 걸어 왔다.

메이저대회에서 6차례 톱 10에 들었지만 번번이 뒷심 부족으로 정상과는 인연이 멀었다. 지난 연말에는 그동안 총액 규모 20억 원 이상을 지원받은 신세계와의 재계약에 실패했다. 2005년과 2006년의 47개 대회에서 예선 탈락은 2차례 뿐일 정도로 꾸준한 성적을 냈지만 정작 우승은 못했기 때문이다. 챔피언만을 알아주는 냉혹한 현실을 실감한 김영은 독하게 마음먹었다. 더 잘 치는 수밖에 없잖아요. 올해 열심히 해서 새 스폰서도 찾아야죠.

미국 투어에서 성실하기로 소문난 한국 선수 가운데서도 김영은 연습 벌레로 불렸다. 김미현(KTF)은 김영은 연습장에서도 가장 늦게 떠난다고 말했다.

약점인 체력을 극복하기 위해 가방에는 늘 3kg짜리 납 주머니를 넣고 틈나는 대로 발목에 차고 다니며 근력을 키웠다. 그는 173cm의 훤칠한 키에 단아한 외모로 2년 연속 국내여자프로골프 연말 시상식에서 사회자를 맡기도 해 필드의 탤런트라 불린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