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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성 냄비

Posted November. 29, 2006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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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5일 오전 11시 북한 개성시 봉동리 벌판에 세워진 개성공단 시범단지 1호 입주업체 리빙아트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냄비가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공단의 첫 작품인 개성 냄비 1000세트는 트럭에 실려 오후 2시경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냄비는 오후 6시부터 서울 도심의 백화점 특설매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판매 개시 15분 만에 400세트가 나갔다. 2000년 8월 남북이 개성공단 건설에 합의한 이후 4년 4개월 만에 개성 시대의 막이 올랐던 것이다.

약 2년이 지난 그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개성 냄비를 생산하는 소노코쿠진웨어 김석철 회장과 이 회사 전신인 리빙아트 강만수 회장을 남북협력기금 유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대출받은 남북협력기금 30억 원 중 3억 원을 개인 빚 등을 갚는 데 썼다는 혐의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남북협력기금 횡령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온 통일부만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김 회장은 투자자 불법 유치 혐의도 받고 있다.

남북협력기금은 1991년 남북 교류와 경협을 위해 설치된 기금이다. 1998년 이후 대북() 경수로 건설, 쌀과 비료 지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등에 쓰인 기금은 4조4700억 원에 달한다. 북에 그렇게 퍼 준 대가가 핵실험으로 되돌아왔는데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그제 한나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내년도 남북협력기금 예산 1조1855억 원을 한 푼도 깎지 않고 정부안대로 통과시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뻐했을 법하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어제 개성공단 관계 기관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북의 핵실험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개성공단 사업이 궤도에 진입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북의 핵 포기를 통한 북-미 관계 개선 없이는 전략물자 반입도 안 되고 공단 제품의 대미() 수출도 안 돼 발전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북-미 관계는 고사하고 공단 입주업체 하나 관리 못하면서 이렇게 낙관만 해도 되는 것일까. 그 책임을 누가 질 텐가.

권 순 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