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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누스 모델

Posted October. 20, 200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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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막막했다. 퀭한 얼굴에는 다크서클이 앉았고, 귀에서는 북소리 같은 이명이 요란했다. 10여 년간 면벽하고 그림만 그려 온, 서른을 훌쩍 넘은 싱글맘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친구의 도움으로 아동복 가게를 열었으나 자본과 경험 부족으로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다. 이때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와 인연이 닿았다. 사회연대은행 홈페이지에 뜬 이 수기()처럼 국내에도 마이크로크레디트의 도움으로 창업한 가게가 벌써 156호점에 이른다.

올해 노벨 평화상 및 서울평화상 수상자인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가 도입한 마이크로크레디트는 담보나 보증 부족으로 은행 문턱을 넘을 수 없는 빈민층에 무보증으로 소액의 창업자금을 대출해 주는 제도다. 내가 배운 경제학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못사는 조국에 절망하던 엘리트 경제학자는 1974년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 주민 42명에게 호주머니에 있던 27달러를 주며 돈을 벌어 갚아라고 했다.

오병이어(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주민들은 돈이 생기자 빌린 돈부터 갚으러 왔다. 이들은 나아가 은행의 예금주가 돼 주었다. 그라민은행은 2185개의 지점을 가진 거대 은행으로 성장하며 세계 50여 개국에 마이크로크레디트 모델을 전파했다. 최근엔 소액금융사업의 가능성에 착안한 씨티은행 등 은행업계와 알리안츠, AIG 등 보험업계도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유누스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배운 유누스는 뿌리부터 시장주의자였다. 그래서 그가 빈민구제를 위해 선택한 방식은 사회주의혁명도, 일방적 자선행위도 아닌 소액 신용대출이었다. 선심()이 빈곤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간파한 그는 자선은 의타적 거지를 양산한다고 강조했다. 소득 1만 달러의 덫에 걸려 있으면서도 퍼 주기 식 복지에 매달려 경제성장의 걸림돌을 자초하는 우리 정부가 유누스 박사한테서 배워야 할 핵심이다.

정 성 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