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처음에 만난 그 설렘으로

Posted May. 17, 2006 07:04,   

日本語

#01 마음을 비운 웰메이드 음반 한 장

1996년 6집 음반을 내놓은 이후 10년 만에 컴백한 X세대 형제 밴드 015B. 주민등록번호로만 보면 어느덧 이들도 기성세대다. 그러나 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스튜디오에 동생 정석원(38)은 분홍색 티셔츠, 형 장호일(41본명 정기원)은 체육복 차림으로 나타난 이들은 체력 때문에 장시간 기타 연주가 힘들어요, 늙으니 사진 찍는 게 점점 두려워요라며 엄살을 부렸다. 애당초 점잖은 어른은 없었다.

정석원=1990년대만 해도 조금만 튀면 가요계에서 주목받기 쉬웠어요. 요새는 청취자들의 음악 수준이 높아져 우리가 명함이나 내밀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장호일=1990년대에는 직설적인 가사든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든 겁 없이 덤볐죠. 그에 반해 지금은 부동산, 혈압수치, 주식에 빠진 중년 같은 상투적인 주제만 만들 것 같아 겁나요.

1990년 1집 텅 빈 거리에서로 데뷔한 이들은 아주 오래된 연인들, 신인류의 사랑 등 감각적인 가사와 실험적인 사운드로 신세대들에게 인기를 얻었지만 1996년 그룹 해체를 선언했다. 쏟아지는 컴백 제의에 불가 입장을 고수했던 이들에겐 해체만큼 컴백도 한 순간이었다. 이가희, 박정현, 윤종신 등의 음반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정석원이 내 음악을 남에게 맞춰 만드느니 차라리 내가 발표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

정=골수팬들은 015B가 화석처럼 굳은 전설의 그룹으로 남길 바라죠. 하지만 명반 소리 듣는 웰메이드 음반 한 장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의 음악적 영향력이 과거만큼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냥 좋은 앨범 한 장을.

#5B 5월, 다시 날다()

이들의 컴백 프로젝트는 향수와 진보다.

2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컴백 콘서트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날 발매되는 스페셜 앨범 파이널 판타지가 향수 프로젝트. 파이널 판타지 앨범에는 캐스커, W, 페퍼스톤 등 밴드 7팀이 참여해 015B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했다.

장=컴백 콘서트 티켓이 거의 매진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어요. 그 분들이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 윤종신을 비롯한 이장우, 조성민 등 추억의 객원가수들, 그리고 히트곡이더라고요.

그러나 향수 프로젝트는 여기까지다. 7월 발매되는 015B 7집에는 힙합, 일렉트로닉 등 진보적 사운드가 담길 예정이다. 다이나믹 듀오, 버벌진트 같은 래퍼들과 가수 박정현, 미국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 크리스 보티 등이 참여하고 015B의 개국 공신과도 같은 윤종신과 신인 객원 가수들도 노래를 부를 예정이다.

정=7집을 만들면서 골수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1990년대 감성을 우려먹고 싶지도 않았어요.

하루에도 몇 번 씩 괜히 컴백한 건 아닐까?, 아냐, 그래도라며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정석원. 그런 동생을 보며 형 장호일은 요새 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이 더 심해진 것 같다고 짐짓 놀리다가 금세 몇 년 만에 녹음실에 오니 여기가 내 자리인 것 같다며 맞장구를 친다. 진지한 분위기도 잠시, 대인 기피증에 걸린 정석원이 볼멘소리로 또 신세한탄을 늘어놓았다.

아, 10년만 젊었어도 외모로 승부하는 그룹이 됐을 텐데.



김범석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