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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국제관계대 카레이스키 클럽

Posted December. 23, 20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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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학생 20여 명과 한국 유학생 40여 명이 함께 만든 학내 동아리 카레이스키클럽의 정기 모임 자리다. 카레이스키는 러시아 내 한인()을 일컫는 말.

이날은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의 백주현() 정무참사관을 초청해 역동적 동북아 질서 속의 한-러 관계 발전이라는 주제 발표를 들었다. 그는 1990년대 한국 외교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옛 소련에서 근무한 경력의 소유자.

학생들의 모임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던 백 참사관은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지자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오랜 외교관 경험을 바탕으로 동서독 통일과 옛 소련 붕괴를 현장에서 지켜봤다며 역사적 사건은 때로는 갑작스레 들이닥친다며 조심스레 답변했다.

이 클럽은 한 학기에 서너 번 외부 전문가들을 불러 이런 자리를 마련한다. 얼마 전에는 KOTRA 동유럽지역 본부장과 한국관광공사 모스크바 지사장이 다녀갔다. 북한 핵 사태가 불거졌을 때는 주러시아 미국대사관의 고위 외교관을 초청해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방침을 듣기도 했다.

물론 무거운 얘기만 오가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초청 인사들에게서 인생 선배로서의 경험도 듣는다.

이 대학은 원래 옛 소련 시절 외교관 같은 대외 일꾼 양성을 위해 설립됐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에서는 외교관의 인기가 별로다. 대신 연봉이 수십 배 많은 외국계 기업과 에너지 관련 기업이 인기가 있다. 한 학생이 외교관이 되고 싶어 입학했지만 대우 때문에 민간 기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백 참사관은 나도 20여 년 전 비슷한 고민을 했다며 외교관으로서의 보람과 고충을 설명한 뒤 당장의 경제적 손익보다는 인생을 길게 보고 신중하게 진로를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백 참사관은 외교관 생활 중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일로 1983년 9월 러시아 사할린 상공에서 대한항공 007기를 격추한 당시 소련 전투기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 씨와 희생자 유족의 만남을 주선하고 통역까지 했던 일을 꼽았다. 무려 9시간이나 걸린 자리였다. 백 참사관이 말은 통역이 가능해도 감정까지는 통역하기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상하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레이스키클럽은 한국 영화 상영 같은 다양한 행사도 마련한다. 회장인 2학년 알렉산드로 셰브첸코 씨는 곧 다도() 특강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학을 전공하는 미래의 한국 전문가들이다. 입학 전부터 이런저런 인연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거나 관심을 가지게 된 경우가 많다.

국제관계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니콜라이 슬르코프 씨는 LG전자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러시아판 장학퀴즈인 움니키 움니차(똑똑한 학생들)에 입상해 한국을 방문한 후 한국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학과 여학생인 아냐 슈닌코프스카야 씨는 한국과 가까운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으로 자연스레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

이 클럽에서 활동한 졸업생은 대부분 러시아 외교부와 한국 기업에 진출한다. 클럽의 초대 부회장인 일리야 표도토프 씨는 졸업 후 삼성전자의 장학금을 받아 한국에서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밟고 있다. 3년간의 한국 유학이 끝나면 삼성전자에서 일할 예정이다. 그는 카레이스키클럽 활동이 장학생으로 선정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유학생들에겐 현지 적응을 돕는 클럽이기도 하다. 공동 회장을 맡고 있는 유학생 이로아 씨는 우리 클럽은 앞으로 양국 관계를 이끌어 갈 미래의 주역들이 어울리는 곳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