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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연봉 버리고 전원까페 차린 까닭은

Posted August. 27, 2004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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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의 첩첩산중 아로마 허브동산에 지난해 개천절에 카페 피스 오브 마인드가 문을 열었다. 이 카페는 요즘 교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와는 다르다. 카페 안에는 수천 권의 책과 음반이 비치돼 있고, 빵 굽는 향기가 넘친다. 주인의 이력 또한 독특하다. 주인 겸 종업원은 비비안으로 알려진 여성 란제리 제조회사 남영 L&F의 사장을 지낸 김종헌씨(57)와 부인 이형숙씨(52)다.

김씨는 회사를 위해 젊음을 바친 우리 사회 초로() 세대의 초상화 같은 인생을 살았다. 동양철학과 서예를 하고 싶다는 꿈을 접은 채 회사에 들어가 새벽과 밤에 어학 학원을 다니고, 연이은 야근과 회식 접대에 숨 가쁜 나날을 보냈다. 졸도와 호흡장애 심장장애까지 터져 나왔지만 회사와 가족에게는 이를 숨겼다. 그에게 위안이 있었다면 언젠가 시작할 전원에서의 은퇴생활을 꿈꾸고 준비하는 것이었다.

혼수가 고작 트렁크 하나 정도였지만, 클래식 기타 사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는 김씨 부부는 사실 1980년대 초 독일 근무 시절부터 은퇴생활을 동경하며 준비해왔다.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중세 귀족의 장서 가득한 성()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부인 이씨는 이때부터 독일 제빵 장인()으로부터 구박 받아가며 빵 굽는 기술을 배웠고, 애서가인 남편은 귀국한 뒤부터 수원의 폐지수집상이든 마산의 골동품 가게든 귀한 고서가 있을 만한 곳이면 시간을 쪼개 달려갔다.

그러다 김씨는 2001년 마침내 사장직을 내놓았다. 하지만 28년간 몸에 밴 회사 생활을 막 바로 전원생활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친구의 특허사무소와 한 완구회사의 홍콩 본사 생활을 1년9개월가량 더 하면서 카페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은 끝에야 실행할 수 있었다.

부부는 한 달가량 인터넷으로 강원도와 경기도의 산수 좋은 곳을 물색하고 현장 답사를 했다. 그러던 중에 별 기대 없이 홍천의 텅 빈 아로마 허브동산을 찾았다가 첩첩산중의 노을 지는 모습에 반해 바로 이곳이라며 새 보금자리를 정해버렸다. 오래 인연을 맺은 사람들 중에 제빵기기 만드는 사람,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다 부부의 구상이 워낙 오래된 터라 실제 카페 꾸미는 작업은 즐겁기만 했다.

지금 부부의 생활은 대략 이렇다.

아침에 카페 앞 계단을 빗질하고, 시장에서 채소를 사옵니다. 통밀에 포도주를 섞어 빵을 만들고, 백일홍과 분꽃 맨드라미의 꽃씨를 뿌리죠. 이웃 주민들이 카페에 와서 일을 도와주면서 친교가 생겼습니다. 저희 카페가 신기해 찾아온 손님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위스키 몇 방울 떨어뜨린 허브티를 마시면서 하루 일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아직 이 부부의 전원생활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지금 홍천 읍내의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카페 옆에 꽤 근사한 집을 지어 완벽하게 자연에 묻히려는 꿈이 남아 있다.

유리 상자 속의 개미집처럼 숨김없이 펼쳐지는 소박한 자전()이 마치 고진감래()의 동화처럼 읽는 이를 즐겁게 만드는 책이다.



권기태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