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사설] 사격중지 명령 우려해 보고 안했다니

[사설] 사격중지 명령 우려해 보고 안했다니

Posted July. 25, 2004 22:07,   

日本語

북한 함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당시 해군 작전사령관이 북 함정의 송신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은 합동참모본부 등 상급부대로부터 사격 중지 명령이 떨어질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조영길 국방장관이 그제 국회 국방위 답변에서 밝혔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합동조사단이 전날 보고 누락의 원인으로 발표한 일부 군 간부들의 부주의 차원이 아닌 심각한 군기 위반이자, 군과 정권 사이에 본질적인 불신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보고는 군대의 생명이다. 현장 지휘관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보고를 왜곡하거나 누락해서는 안 된다. 지휘관이 보고로 인해 예상되는 정치적 결과를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 군대는 이미 정상적인 군대가 아니다. 조 장관은 (해군 작전사령관이) 상황 종료 후 언론 등에 의한 사격 부당성 제기로 북측의 내부 분열 유도에 역이용당할 우려도 있어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현장 지휘관이 왜 언론까지 미리 걱정해야 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군의 사기를 고려해 관련자들을 경징계하기로 했다지만 그 같은 징계가 합당한지 의문이다. 경징계는 청와대가 한때 이번 사건을 남북관계 진전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군부 강경세력의 허위 보고로 판단하고 군을 너무 몰아붙인 데 대한 자책의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군의 사기와 군기 위반은 별개의 문제다.

이번 사건이 행여 군과 정권 사이의 신뢰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 화해 협력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북한을 보는 군과 집권세력 간에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징후들이 감지되고 있다. 정권이 군이란 보수적이고 대결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레 짐작하고, 군은 그런 정권을 마음속으로 불신한다면 안보를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불신과 단절의 벽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사건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이재호 leej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