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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인간국보

Posted March. 16, 200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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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와 디 아워스로 아카데미 남녀주연상을 각각 수상한 할리우드 스타 러셀 크로(40)와 니콜 키드먼(37)이 최근 나란히 호주의 인간국보로 선정됐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성장한 키드먼과 뉴질랜드 태생인 크로는 모두 호주 국적을 갖고 있다. 이들은 호주의 살아있는 국보위원회가 1997년 인간국보 100인을 처음 선정한 이후 지난 7년간 사망한 15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명단에 포함됐다. 새 명단에는 테니스 스타와 왕년의 육상선수, 발리 폭파 희생자들을 치료한 의사도 들어있다.

한국에도 인간국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청이 보존가치가 있는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이들을 인간문화재라고 부른다. 현재 무용 연극 음악 놀이와 의식 무예 음식 공예기술 등의 분야에서 109종목 215명이 생존해 있다. 하지만 60대 이상이 170명으로 전체의 79%를 차지할 만큼 노년층 일색이다. 문화재청이 지급하는 지원금이 월 100만원에 불과해 사실상 전통기능공 정도의 대우가 고작이다.

이런 풍토가 못마땅해서였을까? 재기와 천재성, 박람강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애 양주동( 19031977) 선생은 생시에 인간국보를 자처했다. 선생의 자화자찬에 대해서는 물론 찬반논란이 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조선고가연구()와 여요전주()에 대해서는 누구나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한다. 선생은 택시운전사에게 국보가 탑승했으니 각별히 운전을 조심하라고 했고, 노상방뇨를 단속하는 경찰관에게는 국보를 몰라보느냐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국보가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신문도 무료구독을 고집할 정도였다.

한국은 반만년 역사에 걸맞게 수많은 국보급 유형문화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평가와 대접은 지극히 인색해 국보급 인간은커녕 존경받는 원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순신 장군과 김수환 추기경마저 흔들어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한국에 인간국보가 없는 것은 그럴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인물을 키우지 않으면서 틈만 나면 어떻게 해서든 깎아내리려고 하는 우리 사회풍토에 더 큰 책임이 있는지 모른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