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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실부

Posted September. 01, 200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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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부(Ministry of Truth) 건물 전면에는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멋진 글씨로 붙어 있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일하는 진리부에선 진리를 다뤄야 마땅할 듯싶지만 사실은 거꾸로다. 신문 잡지 등 모든 기록물을 정부의 선전목적에 맞춰 바꾸는 일을 한다. 역사란 필요하면 깨끗이 지워버리고 다시 고쳐 쓰는 양피지와 같은 것. 물론 위조행위를 한다는 인식은 없다. 오식 오자 잘못 인용된 것들을 정확하게 바로잡는 것일 뿐.

공상 속의 이 관청이 실제로 영국에 등장할 것 같다. 토니 블레어 영국 정부가 각 부처의 공보업무를 총괄하는 진실부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영국의 인디펜던트지가 전했으니. 그런데 영문 표기가 하필 1984년과 같은 Ministry of Truth다. 무기 전문가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자살 이후 신뢰성을 잃은 정부가 공보기능을 쇄신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이란다. 최근 켈리 게이트 여파로 물러난 스핀 닥터(정치적 목적으로 뉴스를 왜곡 조작하는 사람) 앨러스테어 캠벨 총리공보수석의 빈자리를 메우는 데는 이처럼 어마어마한 관청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러나 진실부 뒤엔 1980년대 스핀 닥터의 원조라 불리는 피터 맨델슨이 개입됐다는 소문이 있어 오히려 개혁 아닌 개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돈다.

더 큰 문제는 스핀의 왕 블레어 총리가 건재한 마당에 어떤 공보부서가 생긴들 무슨 진실이 나오겠느냐는 회의가 팽배한 데 있다. 말에 무슨 죄가 있으며, 리더의 말을 대신 해주는 대변인이 무슨 죄인가. 오히려 그 말을 하게 만든 리더의 그릇된 소신이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영국 리즈 메트로폴리탄대의 앤 그레고리 교수는 언론에 스핀 말고 진실을 쓰라고 주문했다. 그러기 위해선 정보는 권력이며 정보를 주무르는 정부는 언론의 감시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언론계 시각이다. 언론이 이 역할을 안 하고 못할 때 정부의 정보 왜곡 조작으로 정권이, 나라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입맛에 맞게 언론을 요리하고 싶은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권력의 속성이 아닌가 싶다.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1일 탄생된 우리나라 국정브리핑 1호에는 제목만 봐도 미소가 나올 만큼 행복한 기사로 가득하다. 경제 생산성 중시 체질로 바뀔 것 정부, 부안주민과 적극 대화하기로 노사문제 투자방해 안 되게 할 터 등등. 이 참에 국정홍보처도 진실처로 이름을 바꾸는 게 어떠실지?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