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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6.25의 빚' 잊었나

Posted June. 26, 200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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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로 625전쟁이 일어난 지 52년이 됐다.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에 휩싸인 때라 올해는 625전쟁을 되새기는 이렇다 할 학술행사마저 찾기 어렵다.

월드컵이 세계사적 의의를 지니는 행사가 됐지만, 반세기 전 이 땅에서 치러진 625전쟁도 세계사적 파장이 큰 사건이었다. 월드컵이 세계적인 축제인 데 반해, 625전쟁은 참담한 비극이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한반도 통일 문제를 논할 때 흔히 비교하던 독일은 1989년 냉전이 종식되면서 통일을 이뤘다. 이와 달리 한반도에는 냉전이 지속돼 왔고, 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정상회담 이후 화해와 협력의 기운이 없지 않았으나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 관계는 교착 상태로 들어갔고, 악의 축 발언 이후 긴장이 크게 높아졌다.

한반도가 독일과 이렇듯 사정이 판이한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625전쟁이 결정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년에 걸친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었다면 분단체제가 이렇게 강고할 리 없다. 혹은 625전쟁이 단지 남북 두 세력 간의 민족내부 싸움이었다고 해도 이 역시 해법이 있었을 것이다.

625전쟁은 미국 소련 중국 영국 일본 등 오늘날 세계의 강대국들이 대거 개입했기에 이후 한반도에 굳어진 분단 체제를 해소하는 해법이 더 한층 복잡해졌다.

625전쟁 당시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625전쟁이 강대국들간 일종의 대리전 성격을 띤 국제적 전쟁이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었다.

625전쟁은 1940년대 말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당면했던 위기를 해소해 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625전쟁이 없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과 독일이 짧은 기간 내에 부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헤게모니 체제도 구축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그렇게 공고하게 지속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미국은 1940년대 말까지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다. 625전쟁 직전인 1949년에는 미국 자신이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었다. 유럽의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도 경제적 위기와 정치 사회적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 중국 소련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자본가층과 국가가 심각한 정당성 위기를 겪고 있었다. 한마디로 자본주의 체제 전반이 위태로웠다.

625전쟁은 유럽과 일본의 피폐, 미국의 경기 후퇴, 자본가 계급과 국가의 정당성 위기 등 40년대 말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위협을 줬던 여러 문제들을 일거에 해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625전쟁 붐으로 횡재를 한 일본과 유럽은 경제 부흥에 성공했다.

미국은 재무장 프로그램을 펼쳐 경기후퇴를 극복했다. 625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자국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625전쟁 이후 황금기를 맞았다. 한반도의 희생 위에 세계 자본주의가 일어난 셈이다.

현 단계에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데는 돈이 핵심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그나마 성과를 거둔 것은 평양 측이 돈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경제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현 정부는 북한에 지원할 능력이 없다. 남북관계가 답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주변 열강들은 자신들이 경제적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범위 내에서 적당한 정도만큼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것을 용인해왔다. 햇볕정책 추진에서의 한미일 공조란 이런 차원에서였다. 현재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을 비롯해 돈이 들어가는 일은 거의 한국 측이 부담을 안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그 영향력에 비해 경제 지원에 매우 인색하다.

625전쟁의 세계사적 의미를 되짚어볼 때 주변 강대국들은 한반도에 빚을 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50여년 전 한반도의 비극을 딛고 재기한 자신의 과거를 상기해야 한다. 요즘같이 야박한 대() 한반도 정책은 역사를 망각한 처사가 아닌가.

이수훈(경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