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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기적을 이끈 박정희

Posted February. 05, 2016 09:10,   

Updated February. 05, 201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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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 김수근이 1960년대 한국 건축의 대표적 양식을 보여주는 이곳의 본관을 설계했다. 1967년 서울을 찾은 휴버트 험프리 미국 부통령은 선진국의 좋은 연구 환경과 대우를 마다하고 귀국한 이곳의 고급 두뇌들을 보며 “세계 최초의 역(逆)두뇌유출 프로젝트”라고 표현했다. 1971년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우주인 닐 암스트롱도 짧은 방한 일정 중 이곳을 찾았다. 대한민국 과학과 산업 발전의 기틀을 닦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다.

 ▷1966년 2월 4일 KIST 설립을 위한 한미협정 서명식이 열렸다. 한국의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미국에서 1000만 달러를 원조하고 우리 정부가 1000만 달러를 출연해 세운 한국 최초의 과학기술종합연구소다. 이후 반세기에 걸쳐 KIST는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 산업 성장의 심장부로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데 기여했다. 그 KIST가 어제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새로운 50년의 비전을 발표한 슬로건이 ‘KIST 2066, 기적을 넘어(Beyond MIRACLE)’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KIST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KIST를 설립한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농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릉 임업시험장에 널찍하게 터를 마련해 주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원’을 수시로 방문해 과학자들을 격려했다. 경제기획원에다 KIST 예산만큼은 손대지 못하게 엄명을 내리고 해외에서 모셔온 박사들이 대통령보다 더 많은 봉급을 받을 수 있게 배려했다. 그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에서 역대 대통령 중 으뜸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런 공을 기리기 위해 2012년 KIST 출신 원로들이 원내에 박정희 과학기술 기념관을 세우려 했으나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 무산됐다. 원래는 어제 타임캡슐을 묻는 행사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의 동상 제막식도 열릴 예정이었으나 제막식은 나중으로 미뤄졌다. 밀가루 한 포대도 아쉬웠던 그 시절, 박정희의 정치적 과오와는 별도로 미래 세대를 위한 원대한 꿈을 향해 이바지한 공은 기억해야 한다.

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