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이달 7일 이후 열흘 넘게 1450원을 웃돌고 있다. 올해 들어 17일까지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평균 환율은 1415.5원으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보다 높다.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 추세라는 게 더 문제다. 연간 기준으로 2021년 이후 줄곧 상승세다. 고환율이 계속되면서 원자재와 에너지 수입 비중이 큰 한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환율 상승에는 미국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 후퇴, 엔화 약세,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주식 대량 매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한미 관세 협상에 따라 매년 최대 200억 달러(약 29조 원)의 대미 투자가 예고된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단기적 요인보다도 국내 외환시장의 구조적 수급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개인·기관의 해외투자와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가 증가하면서 지속적인 환율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해외에 투자한 금융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純)대외금융자산은 6월 말 기준 1조304억 달러(약 1510조 원)에 이른다.
과거엔 환율 상승을 수출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는 호재로 봤지만 지금은 환율이 너무 올라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큰 상황이 됐다.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에게 큰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환율 변동 폭도 커 당장 내년 경영계획을 세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원화 기준 석탄, 원유 및 천연가스, 광산품 등 원재료 가격은 5년 전에 비해 80.4%나 올랐다.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으로 식품가격 등이 크게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4% 올라 1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나타내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인플레이션 불안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고환율에 따른 고물가가 이어지면 간신히 살아나고 있는 내수가 다시 직격탄을 맞게 되고, 부동산 등 자산시장을 자극해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당국은 환율 불안이 실물경제로 확산하지 않도록 물가동향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정책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시작한 국회도 환율과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돈 풀기 정책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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