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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 한 석유화학 민관 원팀으로 뭉쳐야

풍전등화 한 석유화학 민관 원팀으로 뭉쳐야

Posted August. 15, 2025 08:19,   

Updated August. 15, 2025 08:19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글로벌 공급 위기와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실적 악화로 인한 자금 부진 문제가 심각하다. 한때 수출 효자였던 산업이 불과 몇 년 만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석유화학산업이 고꾸라진 데는 최대 수출처였던 중국이 급격하게 생산량을 늘리면서, 되레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게 크다. 잘나갈 때 위기에 대비했어야 하지만 “중국 기술력이 단시간에 한국을 넘어설 수 있겠냐”는 자신감이 화를 불렀다.

준비 없이 당한 위기에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대응책보다는 ‘네 탓 공방’만 오가고 있다. 26년 동업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천NCC의 자금 지원 문제로 드잡이했던 한화그룹과 DL그룹 이야기다. 여천NCC는 두 회사에 배당으로만 각각 2조 원 넘게 벌어줬지만, 2022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실적 부진에 원수보다 못한 싸움을 하고 있다. 3000억 원 자금 지원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기업 총수의 비공식 발언을 노출하거나 ‘모럴 해저드’와 같은 경영상 금기어를 내세워 서로 비방전에 나섰다. 양사 간 비밀리에 이뤄지던 납품 관련 계약이나 국세청으로부터 과징금에 대한 상세 내용이 공개되면서 제 살 갉아먹기 식의 공방을 펼치고 있다.

두 회사의 갈등은 이제 여천NCC의 사내 게시판까지 점령했다. 양사에서 임명한 공동 대표들이 상대를 향한 삿대질에 가까운 원색적인 담화문과 반박문을 내놓은 것이다. DL 측 공동대표가 먼저 한화를 향해 “연초부터 7월까지 낮은 원료 계약을 통해 가져간 380억 원을 돌려 놓으라”고 쏘아붙였다. 이에 한화 측 공동대표는 “상호 비방이 가중되면 최악의 경우 조직이 와해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실적 악화에 가뜩이나 직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사가 임명한 공동 대표들까지 으르렁대면서 회사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기 전에 경고장부터 날리는 중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4일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석유화학산업 업계가 자발적인 사업 재편에 참여해야 한다며 “무임승차 하는 기업은 범부처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정치권에서도 여천NCC로 맞붙었던 한화그룹과 DL그룹의 관계자를 국회로 불러 질책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저마다 자신이 돋보일 궁리만 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어영부영하는 사이 구조조정의 ‘골든 타임’이 지나갔다고 보고 있다. 중국뿐 아니라 중동까지 값싼 원자재를 앞세워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견딘다고 해결되는 상황이 아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현재 불황이 지속되면 3년 이내에 국내 석유화학업체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 탓과 내부 총질만 하다가는 국내 곳곳에 있는 석유화학단지들이 한국판 러스트벨트(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로 순식간에 바뀔 수밖에 없다. 기업과 정부, 정치권이 ‘원 팀’을 구성해서 하루라도 빨리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살길이다. 이러다가 ‘실버 타임’, ‘브론즈 타임’까지 놓칠 수 있다.
풍전등화 한 석유화학  민관 원팀으로 뭉쳐야


이동훈기자 d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