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9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첫 통화에서 “오늘날 전략적 환경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며 “상호 국익 관점에서 미래 도전과제에 같이 대응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도 “양국 정부가 지금까지 구축해 온 기반을 바탕으로 관계를 더욱 진전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두 정상은 한미일 협력의 틀 안에서 다양한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공통의 노력을 하기로 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이 대통령 취임 닷새 만에 이뤄진 한일 정상 간 25분 통화에서 껄끄러운 과거사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사실 축하와 감사, 미래 협력에 대한 덕담으로도 시간이 모자랐을 것이다. 다만 이 대통령은 “보다 견고하고 성숙한 한일 관계”를 주문하며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전향적인 자세를 은근히 기대하는 뉘앙스였고, 이시바 총리는 “양국 정부가 지금까지 구축해 온 기반”을 강조하며 윤석열 정부 때의 긴밀한 협력 기조 계승을 바라는 분위기였다.
이 대통령은 전임 윤석열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해 “굴욕외교”라며 누구보다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 “한일 관계에서도 실용적 관점이 필요하다”며 ‘협력할 건 협력하고 정리할 건 정리하는 합리적 관계’ 설정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한때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라고 비판했던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해법에 대해서도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며 사실상 유지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물론 새 정부의 대일 기조에서 전임 정부 때와 같은 적극적 관계 개선 의지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와 미래지향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법을 내세우면서도 “과거사 문제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가 늘 잠복해 있는 한일 관계에서 미래협력 사안과의 분리 접근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그간 한일 관계의 부침에는 일본 측의 무책임과 무성의가 원인이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던 우리 정책 기조에도 문제가 있었다. 한일 관계는 한미 동맹의 연장선으로서 한미일 3국 협력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과감한 대일정책 수정은 국내적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북핵 위협의 고도화와 세계적 진영대결의 격화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아무리 탄핵당한 정부의 정책이라도 계승할 것은 계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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