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이 체감한 사회갈등이 2018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가장 심각하다고 꼽은 갈등은 ‘진보와 보수’ 대립이었다. 지역이나 빈부 갈등보다 이념 갈등이 우리 사회의 통합을 저해한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6∼9월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우리나라 사회갈등의 평균 수치는 등락을 반복하다가 2023년(4점 만점에 2.93점), 2024년(3.04점)으로 2년 연속 상승했다. 가장 심각한 갈등은 진보와 보수 간 갈등(3.52점)으로 수도권과 지역 간 갈등(3.06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3.01점), 노사 갈등(2.97점) 등을 한참 앞섰다. 갈수록 깊어지는 이념 갈등은 ‘절제와 타협’ 요구되는 민주주의가 궤도를 이탈할 징후였던 셈이다.
이번 조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전에 이뤄졌다. 이념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은 극한 대치를 이어갔고, 갈등을 조정하며 국정을 이끌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반국가세력’ 운운하며 계엄 사태를 초래했다. 이후 석 달가량 이어지고 있는 탄핵 정국에서도 우리 사회는 극심한 국론 분열을 겪고 있다. 같은 조사를 지금 실시한다면, 이념 갈등수치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국론 분열에 올라타 내 편을 집결시키고 세를 불리는 데만 혈안일 뿐이다. 3·1절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 대통령의 탄핵 찬반 집회에서 여야 의원은 앞장 서서 상대 진영에 대한 막말과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헌법재판소 등을 폄훼하며 민주주의를 떠받친 제도를 불신하도록 선동했다. 이젠 대학가마저 탄핵 찬반 집회로 혼란스럽다.
이념 갈등이 일상 곳곳에 스며들면 상식적인 중도층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사회 갈등은 증폭된다. 이런 극단적인 분열이 계속된다면 탄핵 심판 이후에도 계엄으로 인한 내상을 치유하고, 사회 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닥친 국가적 위기는 단단히 뭉쳐도 헤쳐 나가기 쉽지 않다. 이념 갈등과 사회 분열을 부추기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정치권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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