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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담긴 사연

Posted January. 29, 2021 07:31,   

Updated January. 29, 202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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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다룬 시에는 저마다 사연이 눈처럼 소복하다. ‘눈 시’를 읽을 때 유난히 살가운 느낌이 들거나 그 의미가 도드라지게 다가오는 것도 그런 제각각의 사연 때문일지 모른다.

 “눈 밟으며 들판을 걸을 때는 아무렇게나 어지러이 가선 안 되지. 오늘 나의 이 발자국, 결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 했던 서산대사의 ‘답설가(踏雪歌)’에는 웅숭깊은 배려심이 배어 있다. 흩날리는 눈발에서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들었던 김광균의 ‘설야(雪夜)’는 아릿아릿한 회한과 추억을 소환하는 애달픔이 넘쳐난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 오오, 눈부신 고립/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처럼 자못 도발적이면서 고혹적인 사연도 있다.

 도롱이 걸치고 삿갓 쓴 노인이 혼자 낚시질하는 강촌의 설경을 그린 이 시에는 어떤 사연이 담겼을까. 낚싯대를 드리운 정겨운 장면은 평화로운 강촌을 떠올리게 하지만 화폭 속 고즈넉한 분위기와 달리 시인의 처지는 암담하고 적막했다. 정치개혁에 참여했다 실패하여 장안에서 쫓겨나 먼 남쪽으로 좌천되었던 시인. 주류 사회로부터 배척된 그는 무려 10년 세월을 유배자처럼 보내야 했다. 새들의 날갯짓도 사람의 발자취도 다 사그라진 강촌은 바로 단절과 폐색으로 점철된 시인의 고적(孤寂)한 삶을 투영한 것이었다.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