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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과 하루키

Posted October. 12, 2013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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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기 수원시로 이사를 간 고은 시인의 집 앞에는 그제 낮부터 취재기자들과 각 방송사의 중계차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오후 8시 노벨 문학상 발표가 예정됐기 때문이다. 집 밖에선 수상 확률을 놓고 취재진들이 대화를 나누느라 어수선했으나 집 안은 별다른 인기척 없이 고요했다고 한다. 발표 순간이 임박하자 긴장감은 고조됐다. 오후 7시 반경 중계차들이 일제히 조명을 밝혔고 방송 기자들은 마이크를 들고 대문 앞에 섰다.

마침내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중계차와 기자들은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해마다 10월의 둘째 목요일에 고 시인 집 앞에서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2000년대 초부터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인은 다시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한국만 아쉬워했던 것은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 역시 유력 후보로 언급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이 실패하자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로크스는 무라카미를 올해 수상 확률이 가장 높은 후보로 예상했던 터라 팬들의 낙담이 더욱 컸다는 소식이다. 한 경제평론가는 하루키노믹스(하루키가 수상할 경우 가져올 경제 효과)를 100억 엔이라 추산했으나 그 꿈이 날아가 버린 셈이다. 도쿄 신주쿠의 한 대형서점은 노벨 문학상 곧 발표란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발표 직후 그래도 계속 응원합니다로 바꿔 달았다고 한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그제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은 하루키가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오보까지 냈다.

고 시인은 2008년 시작() 활동 5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을 펴내면서 이렇게 다짐했다. 내 삶의 후반기는 전반기의 결산에 머무는 게 아니라 새로운 질풍노도의 시기가 될 것 같다고. 자신의 말처럼 그는 안주하지 않고 날마다 치열하게 창작에 매달리고 있다. 고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이름이 시인이며 평생 동안 이를 지키려 애써왔다고 말한다. 노벨상 수상 여부에 상관없이 그는 이미 가장 높고 영광스러운 이름을 지켜낸 시인이다.

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