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월 13일 516 군사정부의 송요찬 내각수반 겸 외무부 장관이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한지 내일로 50년을 맞는다. 1960년 79달러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1년 2만4000달러로 300배 뛰었다. 같은 해 북한은 국민소득 137달러로 우리보다 잘 살았지만 현재 우리 경제규모가 북한의 37배가 넘을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경제 신화를 말할 때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빼놓을 수 없다.
1961년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집권 초부터 경제개발을 국정의 중심과제로 삼고 정부가 중심이 돼 경제개발을 이끌었다. 세계은행이 고도성장을 이루는데 국가 역할이 중요했다고 인정한 개발주의 경제다. 그 결과 1961년 수출은 미미했고 수입은 해외원조가 대부분이었던 우리경제가 지난해 12월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넘어섰다.
1996년까지 7차 5개년 계획으로 압축성장을 추진하고 1970년대 중화학공겁 육성에 매진하면서 대기업 집중, 소득분배 악화, 노사갈등 등 오늘날까지 드리워진 양극화의 그늘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경제성장을 앞세운 장기집권과 민주주의 후퇴, 언론탄압과 인권 유린 역시 부정적 유산이다. 그러나 독재에 대한 비판에 눈이 가려 한민족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수천년 지속된 빈곤을 극복한 기적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도 할 수 있다(can-do-spirit) 정신을 국민에게 불어넣어 국운을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서 루이스는 인도가 공업진흥을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고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해 구성원들의 경제 하려는 의지(the will to economize)가 경제개발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승만 정부와 장면 정부 시절에도 각각 7개년, 5개년 개발계획을 초안한 적이 있었다고는 하나 성공하지 못한 것은 박정희 모델의 정신이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 3만3267군데의 마을에 공공사업을 위한 300여 포대의 시멘트를 무료 공급한 뒤 스스로 해낸 마을엔 더 지원하되 자립의지가 결핍된 마을은 제외하는 새마을 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 정신을 일깨웠다. 하루 세끼 밥을 다 먹지 못하던 그 시절 우리가 땀과 눈물로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을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허허벌판에서 기업을 키워낸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같은 기업가정신이 지금 재계에 충만한지 묻고 싶다. 젊은이들도 우는 소리만 하지 말고 can-do-spirit 정신에서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