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최대 공공노조와 민간노조가 48시간 총파업에 들어간 19일(이하 현지시간) 수도 아테네에서 10여만 명이 격렬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으로 경찰경비초소 등이 불탔고 국회의사당 주변은 시가전이 벌어진 듯했다. 정부청사 학교 병원 은행이 모두 문을 닫았고 아테네 국제공항에서는 상당수의 항공편이 취소됐다. 외국인 관광객은 관광지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청소노조 파업으로 각 도시들은 20여일 째 쓰레기 대란을 겪고 있다.
그리스 노조와 시위대는 정부의 추가 긴축재정안에 반대하면서 구제금융 필요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정부 긴축안은 공무원을 감원하고 세금을 더 걷고 연금을 깎겠다는 내용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약속받은 구제금융을 계속 지원받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리스 정부는 빚을 갚지 못할 위기에 빠진 작년 5월 구제금융을 요청해 4년간 총 1100억 유로(약 173조 원)를 받기로 하고 지금까지 650억 유로를 받았다. 이 돈에는 EU 각국 국민이 낸 세금이 포함돼 있다. EU는 긴축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를 계속 지원할 명분이 없다. 만일 EU의 6차분 구제금융 80억 유로가 이달 중 국고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리스는 부도가 난다. 그런데도 국민이 정부 긴축안을 못 받아들이겠다고 난리다.
그리스의 긴축안은 19일 의회의 1차 투표에서 가까스로 통과됐고 20일 2차 투표도 통과하면 확정된다. 그리스의 긴축 의지가 확인되면 EU 정상들은 23일 회담에서 그리스의 빚을 깎아주는 회생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부도위기에서 탈출할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정치권의 무분별한 복지 경쟁으로 빚 위의 복지를 누린 그리스 국민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구제금융이나 채무재조정만으로는 재정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 총파업과 시위로 재정파탄을 막을 수는 없고 상황만 악화될 뿐이다.
8월 방한했던 아리스테스 하치스 그리스 아테네대 교수는 그리스는 복지 포퓰리즘과 과도한 규제로 경제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고 분석했다. 그리스 위기는 EU로 전염돼 지금은 세계 경제의 위협요소가 됐다. 한국은 그리스에 비하면 국가채무 수준은 양호하지만 증가속도가 빨라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고령화와 남북통일 등 재정수요가 예상되는데도 정치권은 복지확충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재정능력 이상의 과도한 복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갈수록 높아져 앞으로 국가채무 관리가 제대로 될지 불안하기만 하다. 불타는 그리스는 허리띠를 한번 풀면 다시 졸라매기 어렵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