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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묻지마 예방접종 열풍

Posted May. 22, 201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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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 된 아들을 둔 직장인 김모 씨(35여)는 그동안 아이 예방접종 비용으로만 100만 원을 넘게 썼다. 개인병원에서 8가지 필수접종에 더해 폐구균과 뇌수막염, A형 간염, 로타바이러스 백신까지 아이에게 맞혔다. 폐렴 예방을 위한 폐구균 백신은 10만 원씩 4번, 뇌수막염 백신은 4만 원씩 4번, 장염을 예방하는 로타바이러스 백신은 10만 원씩 3번에 걸쳐 맞혔다. 김 씨는 병원에서 비싼 백신만 골라 맞히면 300만 원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우리 아이가 외아들이라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그런 거 안 맞고도 잘 큰다는 친정엄마와 다투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소에 대한 편견이 고비용 부른다

요즘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예방접종 열풍이 불고 있다. 정부는 B형 간염과 소아마비 등 8가지를 필수예방접종 항목으로 분류해 무상으로 접종해주고 있다. 하지만 젊은 부부들은 자녀에게 폐렴, 장염 예방주사까지 맞히겠다며 민간병원에서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백신을 맞히느라 100만200만 원을 쓰고 있다. 여기에 어렸을 때 맞을수록 좋다는 자궁경부암 예방백신까지 접종하면 60만 원이 추가된다.

예방접종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필수접종까지 모두 민간병원에서 하려는 분위기 때문이다. 보건소에서는 필수접종 8종 22회가 모두 무료다. 민간병원에선 보험혜택을 받아도 50만 원 정도 든다. 온라인상에는 보건소 백신은 일반 병원 것보다 효과가 떨어진다는 내용부터 보건소 약은 중국산 싸구려라는 등 근거 없는 소문들이 나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2000년 이후 보건소들도 백신 전용 냉장고를 갖추고 위생적으로 접종을 하고 있다며 36개월 단위로 약을 조달받기 때문에 신선한 백신이 제공된다고 설명했다.

안전한 보건소 접종을 근거 없이 외면하고 고액의 민간 접종을 택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다. 21개월 된 딸을 둔 김모 씨(31여)는 6개월 동안 예방접종비만 매달 30만 원 넘게 썼다며 첫째 아이 때는 잘 몰라서 민간 병원만 찾았다고 말했다.

선진국 어린이들은 다 맞는다던데

전문가들은 백신을 맞혀서 나쁠 것까진 없지만 걸릴 확률이 낮은 질병까지 과도하게 대비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나라마다 환경이나 인종 특성에 따라 같은 질병도 발병 확률이 달라진다는 것.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유럽에선 뇌수막염을 예방하는 히브(Hib) 백신을 많이 접종하지만 국내에선 발병이 흔하지 않아 필수접종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국내 필수인 장티푸스와 일본뇌염, 결핵 백신 등은 외국에선 거의 맞히지 않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병원 장광천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폐구균이나 뇌수막염은 6, 7세 이후 발병률이 아주 낮기 때문에 6, 7세 이후에는 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영유아들도 어린이집 등 단체생활을 많이 하는 등 환경 변화를 고려해 필수접종 항목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동호 원자력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비용 부담이 높은 질병의 경우 국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접종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유행하는 A형 간염처럼 국민들이 꼭 맞아야 한다고 판단되는 백신은 필수항목에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지현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