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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독()

Posted November. 03, 200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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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통상 재임 중 정기국회 개회와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비롯해 10여 차례 국회에서 연설할 기회가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런 기회를 활용하기 보다는 회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 16년 동안 7번,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 7년 동안 5번 직접 연설했다. 나머지는 총리에게 대독()을 시켰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화 이후에도 이런 회피 현상은 여전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4번,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번, 김대중 전 대통령은 1번, 노무현 전 대통령은 4번 연설했을 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10월 7일엔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3개월 전부터 대통령의 직접 연설을 요청했고, 청와대도 호의적 반응을 보였건만 정작 당일 아침 김석수 국무총리가 대신 나타나자 박 의장이 1시간 동안 본회의 사회를 거부한 것이다. 예산안 시정연설에 대한 대통령들의 관심은 특히 낮은 편으로 지금껏 대통령의 직접 연설은 1988년(노태우), 2003년(노무현), 2008년(이명박) 등 모두 세 번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이 작년과는 달리 올해 예산안 시정연설은 정운찬 총리에게 맡겼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예산안 시정연설은 국민 세금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담은 청사진이므로 대통령이 직접 연설하는 것을 전통과 관례로 세워야 한다고 요청했건만 이 대통령은 응하지 않았다. 역대 3번의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보듯 취임 첫 해 외에는 총리가 대독한 관례를 앞세운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라디오와 인터넷을 통한 27번 째 대국민 연설은 예정대로 했다. 어느 모로 보나 모양이 좋지 않다.

대통령이 국회에 나가 연설하면 얻는 것이 많다. 우선 국정에 관한 국회의 협조를 얻기가 용이해질 것이다. 국회에 대한 존중과 국민과의 소통 차원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행여 국회 단상에 서는 것을 권위 손상으로 여기거나, 연설 도중 있을지도 모를 야당의 야유와 소란 같은 걸 걱정한다면 국가지도자로서 협량()이라는 말을 듣기 알맞다. 이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 관한 한 총리 대독을 없애는 관행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이 진 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