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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프랑스판 복면시위 금지법

Posted June. 23, 200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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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미국 스탠포드대 필립 짐바도 교수(사회심리학)는 평범한 여성 8명을 4명씩 나누어 한 집단은 복면을 하고, 다른 집단은 얼굴을 드러내고 이름표를 달게 한 뒤 피()실험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복면 집단이 신원노출 집단보다 두 배 이상 강한 전기충격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면과 익명 속에 숨은 인간이 악마적 본성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 실험이다.

최근 3년간 발생한 국내 폭력시위 중 복면 착용자의 출현 비율은 2006년 62건 중 36건(58%), 2007년 64건 중 38건(59%), 2008년 77건 중 55건(71%)이었다. 폭력시위와 복면 사이에 상관 관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 등이 지난해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가면 마스크 같은 복면도구를 착용하거나 착용하게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신설한 집시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신분을 숨기고 휘두르는 폭력을 막아보자는 취지의 법안이다. 그런데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야당이 반대해 낮잠을 자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20일 공공장소에서의 복면 시위를 금지하는 총리령을 발표했다. 위반하면 1500유로(약 265만 원)까지 벌금을 물리며, 1년 안에 다시 위반할 경우엔 최고 3000유로(540만원)로 늘어난다. 올 4월 초 프랑스 동부 도시 스트라스부르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복면을 한 과격시위대가 차량 파손과 주유소 습격 등 폭력시위를 벌인 뒤 비판여론이 고조된 데 따른 것이다. 복면시위 금지는 1989년 독일에서 도입된 이후 스위스 오스트리아로 확산돼가는 추세다.

프랑스에서는 집회 시위의 자유가 제한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처벌 수위를 낮춘 것이 이 정도다. 이에 대해 독재적 발상이라는 비난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는 복면을 쓴 시위대가 경찰을 폭행하고 걸핏하면 죽창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무법천지가 벌어진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경찰관을 살상하고 국가와 개인 재산을 손괴해도 무방한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박 성 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