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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베레스트 코리안 루트

Posted May. 22, 200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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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850m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남서벽. 6500m의 캠프2에서 8400m의 캠프5까지 약 2000m에 걸쳐 수직에 가까운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진다. 예측할 수 없는 눈사태와 낙석이 빈번히 산사나이들의 생명을 앗아간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을 통 털어 마칼루 서벽, 로체 남벽과 함께 가장 오르기 힘든 마()의 루트다. 에베레스트 20여 개 등반 루트 중 남서벽 루트는 영국 팀과 옛 소련 팀이 만든 두 개밖에 없었다.

박영석 원정대가 그제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 정상에 오르는데 성공,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에 처음으로 코리안 루트를 열었다. 박영석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완등(), 7대륙 최고봉 완등, 3극점 도달 등 산악 그랜드슬램을 세계 최초로 달성한 데 이어 이번에 다시 한번 국내외 산악계를 놀라게 했다. 최홍건 한국산악회장은 기존의 루트로 남서벽을 오르기도 쉽지 않지만 신()루트 개척은 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다면서 고() 고상돈 씨가 1977년 달성한 에베레스트 한국인 첫 등정에 버금가는 우리 산악계의 쾌거라고 평가했다.

박 대장이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처음 도전한 것은 1991년. 온갖 기록을 갈아 치운 천하의 박영석도 이 험준한 절벽 앞에서는 네 번이나 무릎을 꿇어야 했다. 1993년에는 남원우 안진섭 대원, 2007년에는 오희준 이현조 대원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필설로 표현하기 힘들만큼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18년 동안의 4전5기 끝에 이뤄진 이번 성공은 먼저 세상을 떠난 후배 산악인들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는 의미가 크다. 경제난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국민에게도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해발 8000m 이상에서 자연은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심술을 부린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정상에 선 열정과 인내, 도전과 개척 정신은 참으로 값지다. 인류사에서 의미 있는 발전을 이끌어낸 원동력은 바로 이런 모험 정신이었다. 박 대장을 비롯해 진재창 부대장, 신동민 강기석 이형모 김영미 대원 등 한국인의 투혼을 보여준 모든 원정대원에게 경의를 표한다.

권 순 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