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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도전 최영씨 위해 스크린리더 개발한 시각장애 선배 김정호씨

사시도전 최영씨 위해 스크린리더 개발한 시각장애 선배 김정호씨

Posted October. 24, 20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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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최초로 2차 사법시험에 합격한 최영(27) 씨. 그의 아름다운 성취 뒤에는 또 다른 시각장애인 후원자가 있었다.

최 씨가 눈 대신 귀로 방대한 분량의 시험 교재를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 김정호(36) 씨. 그가 한글 텍스트로 모니터에 떠 있는 교재 내용을 음성으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인 스크린 리더를 개발한 덕분에 최 씨는 귀로 법전을 익힐 수 있었다.

23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하상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김 씨. 그는 시련을 딛고 도전을 감행한 영이가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지난날을 회고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2000년 5월, 김 씨는 최 씨의 도움으로 논문을 준비하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선천적 시각장애로 책을 볼 수 없었던 김 씨는 당시 서울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논문을 준비하며 자료를 대신 읽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김 씨가 장애인복지관의 소개로 만난 자원봉사자가 바로 서울대 법학과 새내기인 최 씨였다. 입학 직후 최 씨는 시력이 급격히 악화됐고 두려운 마음에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자원봉사에 나선 것이었다.

최 씨는 그나마 남아 있던 시력으로 책을 읽어 주었고 김 씨는 장애인 선배로서 최 씨의 정신적인 멘터가 되었다. 김 씨는 가족들에게도 이해받기 어려운 고통을 함께 나누며 우리는 친형제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책을 볼 수 없다는 한계를 딛고 사법시험에 도전하겠다는 최 씨를 보며 김 씨는 영이가 나에게 그랬듯 나도 영이에게 눈이 되어 주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시각장애인 전문 프로그램인 스크린 리더. 김 씨가 대학원 졸업 후 다른 시각장애인 3명과 함께 서울 구로구의 한 골방에 벤처기업을 창업해 3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시각장애인들이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김 씨는 최 씨가 시험을 볼 때마다 하루 먼저 시험장에 가 프로그램을 설치해 줬다. 2차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가 난 21일 최 씨는 김 씨에게 가장 먼저 기쁜 소식을 알렸다.

김 씨는 영이는 장애인에게도 사회의 리더로 성공하는 기회가 열려 있다는 걸 보여줬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는 스크린 리더가 도입되면서 점자에 제한되어 있던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 경로가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프로그램을 활용하려면 책을 한글 텍스트 파일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저작권 문제가 발생한다. 시험교재를 한 장 한 장 작업해 텍스트 파일로 만들 경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김 씨는 텍스트 파일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출판물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이스 브레일(음성 점자) 프로그램을 최근 개발했다. 김 씨는 12월 이 프로그램을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급할 예정이다.

그는 책을 볼 수 없으면 시각장애가 정보장애를 초래하고 결국 장애인 빈곤으로 이어진다며 장애인이기에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정보기술(IT)과 접목하면 수많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신광영 김지현 neo@donga.com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