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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울었다 4년간 별렀다 마침내 웃었다

Posted August. 14, 2008 06:32,   

4년전 울었다 4년간 별렀다 마침내 웃었다

4년 전 아테네 올림픽 선수촌에서 까무잡잡한 얼굴의 소년을 만났다.

물안경과 수영모를 쓴 자리만 하얗고 온통 까맣게 탔기에 웃음까지 자아내게 했다.

수영장에 지붕이 없어 땡볕을 오래 쬐다 보니 그리 됐다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인 그가 바로 세계의 마린 보이로 성장한 박태환(19단국대)이었다.

당시 서울 대청중 졸업반이던 그는 15세의 나이로 한국 선수단 가운데 최연소 선수였다.

선수촌 식당에서 이언 소프를 봤는데 발이 진짜 크더라고요라고 순진한 모습을 내비친 그는 코치님이 네 꿈을 펼쳐라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많이 배울 거예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박태환은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출발을 서두르다 실격당해 그토록 꿈꾸던 올림픽 풀에서 헤엄조차 칠 수 없었다. 자신의 우상인 소프와 한번 겨뤄 보겠다던 어린 가슴에 큰 상처를 받았기에 화장실에서 2시간을 펑펑 울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러 박태환은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딴 데 이어 자유형 200m에서도 은메달을 추가하며 세계 정상의 수영 스타로 발돋움했다.

독일의 DPA통신은 이젠 화장실에 숨을 필요가 없는 스타라는 찬사를 그에게 보냈다.

그때의 수치스러움이 내게 오기를 심어 줬다는 박태환의 말처럼 쓰라린 실패가 장래의 성공을 이끈 추진력이 된 것이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아테네 올림픽 때의 아픈 기억을 발판으로 삼아 영광의 주인공이 된 재수생의 성공 스토리가 주목받고 있다.

유도 남자 60kg급에서 5연속 한판승으로 한국에 대회 첫 금메달을 안긴 최민호(28한국마사회)도 그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아테네 대회에서 체중 감량에 실패해 10kg 가까이 한꺼번에 뺐던 그는 뒷심 부족에 허덕이다 경기 도중 쥐까지 나며 아쉬운 동메달에 머물렀다. 그는 혼자 소주 7병을 마셔도 분이 풀리지 않을 만큼 속이 상했다. 그렇다고 술독에 빠져 방황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도복을 고쳐 맨 뒤 철저한 체중 관리 속에 4년을 기다린 그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세계의 강호들을 연거푸 매트에 메쳤다.

죽을 것 같은 고통. 하루하루 눈물로 보냈다며 올림픽을 준비한 최민호는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건 뒤 맨 먼저 평소 그렇게 먹고 싶어도 몸무게 때문에 멀리 했던 라면 국물부터 훌훌 마셨다.

진종오와 남현희는 아테네 올림픽이 끝난 뒤 본보에 연재된 못다 한 이야기라는 시리즈에 소개된 적이 있다.

진종오는 50m 권총 결선에서 선두를 달리다 7번째 발에서 6.9점이라는 어이없는 오발탄을 날려 은메달에 그쳤다. 남현희는 펜싱 여자 플뢰레에 출전해 16강전에서 세계 4위를 꺾으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8강전에서 방심한 나머지 세계 5위에게 패해 메달을 따는 데 실패했다.

진종오와 남현희는 당시 인터뷰에서 4년 후 아테네에서는 주연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바로 훈련을 재개했다. 지켜봐 달라며 포부를 밝혔다.

4년 동안의 절치부심은 빛을 발했다.

그 사이 결혼을 한 진종오는 2세 계획도 올림픽 이후로 미뤘고 결전에 앞서 머리까지 짧게 깎으며 결의를 다져 10m 공기권총 은메달에 이어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땄다. 한국 사격의 올림픽 금메달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16년 만이었다.

결선에서 한 발 쏠 때마다 순위가 바뀌는 치열한 접전을 치르며 0.2점 차로 승리를 지킨 진종오는 4년 전의 경험을 통해 어떤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도 칼끝에 희망을 걸어 온 남현희는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올림픽 첫 메달인 은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