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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깃발로 뭉치던 시대는 갔다

Posted February. 16, 2008 04:02,   

나는 보수주의자라고 하면 그걸로 서로가 통했던 그런 시절이 그립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시대에는 모두가 한 깃발 아래 있었죠.

미국 레이건 행정부 시절 연방정부에서 국가안보 정책을 자문했던 조지타운대의 한 교수가 14일 기자에게 한 말이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지만 정작 공화당 핵심 지지자들은 뜨악한 표정을 짓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다 나온 푸념이다.

그는 지금은 대부분 중도 사퇴했지만 지난달 초까지의 공화당 후보들 면면을 보면 보수주의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보 상호간 보수주의자 인정 안해

미국에서 보수주의는 자유무역 군사력에 바탕을 둔 강력한 안보 작은 정부 전통적 가치관 존중 등을 핵심 요소로 하며 이것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의 보수파는 여러 분파로 나누어져 버렸다. 지난해 가을 대선전이 본격화하면서 동성애 결혼 인정 반대, 낙태 반대 등을 중시하는 사회적 보수파는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강력한 안보와 애국주의, 이라크전쟁 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매케인 의원을 지지했고 테러와의 전쟁, 국토안보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적극 밀었다.

또 감세와 작은 정부를 중시하는 경제적 보수파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지했다.

물론 당내 경선 때 각 후보의 특장을 찾아 지지세가 몰렸다가 후보가 결정되면 다시 합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공화당의 상황은 다르다.

이들은 상대 진영을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사회적 보수파는 매케인 의원, 줄리아니 전 시장 등을 민주당원보다도 못한 이단자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공화당 원로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최근 출간한 책에서 공화당은 지난 30년간 놀랄 만큼 훌륭한 단합의 시대를 지내 왔지만 이제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차기 공화당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레이건의 후예임을 자처하지만 실제론 각자 레이건의 조각만을 붙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롬니 전 주지사는 14일 매케인 지지를 선언하면서 나는 내 견해가 있고, 매케인도 그의 의견이 있지만 우리는 같은 정당 소속으로서 하나가 됐다며 당의 단합을 호소했다.

이로써 매케인 의원은 줄리아니 전 시장, 톰슨 전 의원에 이어 롬니 전 주지사에게서도 지지를 얻어냈다. 이에 앞서 10일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서 공화당 후보로 확정되면 돕겠다는 지지 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공화당의 한 간부는 부시 대통령의 매케인 지지 등에도 불구하고 핵심 보수파들 사이에선 불법 이민, 감세, 정치자금 등 여러 정책에서 비()공화당적 태도를 보여 온 매케인이 대통령이 되면 보수주의의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 핵심 지지자들이 매케인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은 아버지 부시 행정부 때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처음엔 세금을 안 올리겠다고 약속했다가 이를 뒤집었고, 진보적 인사를 대법원 판사에 임명해 보수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같은 보수파의 분열은 시대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산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양상

조지워싱턴대 박윤식 교수는 이민자가 많아지고 낙태, 동성애 등 각종 새로운 이슈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공화당원 내부에서도 이슈별, 쟁점별로 다양한 의견의 분화가 생겼다며 과거의 단일한 보수주의 깃발만으로는 다 끌어안을 수 없게 됐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정치, 경제 이슈에선 정통 보수파면서 사회적 가치에선 중도파인 사람이 늘어나는 등 다양성이 커진 상황에서 중도파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게 공화당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진행돼 온 이 같은 보수파의 다변화는 한국에서 지난해 말 대선 때 남북관계를 놓고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에 반발하는 강경 보수층이 이회창 후보 주변으로 모여든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이기홍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