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통일부 유명환 대사
외무고시 7회 출신으로 35년 째 직업외교관의 길을 걷고 있다. 주미대사관 참사관, 북미국장, 주미대사관 공사 등을 거친 미국통. 대테러 및 아프간 문제 담당대사, 주이스라엘 대사를 지내 중동 지역에도 정통한 편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 외교안보비서관을 맡았고 잘 나가던 외교관들이 줄줄이 물을 먹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외교통상부 제 1, 2차관을 역임했다. 젊은 시절 일본대사관에 한차례 근무한 적 밖에 없는데도 일본대사로 발탁되자 현정권 실세에게 줄을 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외교관답지 않게 정치적 판단이 뛰어나다는 평.
외교부 내에서는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통솔력이 강한 반면 힘 있는 사람의 눈치를 지나치게 본다는 상반된 평가가 있다. 2006년 11월 제 1차관 시절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국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요청에 따라 국회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여당과 긴밀히 협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열린우리당 의원들로부터 호된 추궁을 당하기도 했다.
교육 과학부 어윤대 내정자
이명박 정부 인선 과정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장, 국무총리, 교육과학부 장관, 경제 부처 장관 후보 등으로 꾸준히 하마평에 올랐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이명박 후보의 정책 수립 등을 도왔지만 이 당선인의 고려대 경영학과 2년 후배여서 당선인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입각을 완곡히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고려대 총장 시절 3000억 원의 학교발전기금을 모으고 본교 캠퍼스를 최신식으로 개발하는 등 추진력을 발휘해 대표적인 CEO 총장으로 불렸다.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때는 와인 선물을 돌려 막걸리 대학의 이미지를 바꾸었고, 영어 강의 의무화 등 국제화에도 앞장섰다. 가끔 나비넥타이를 매는 감각도 갖추고 있다.
참여정부의 대학 규제 정책에 맞서 정부가 사립대를 국립대로 착각하고 있다며 3불()정책을 비판한 바 있다. 2006년 총장 재임을 시도했지만 그의 개혁 드라이브에 거부감을 느낀 교수들의 반발로 예선에서 탈락하는 좌절을 겪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