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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다 하얀 산타

Posted December. 25, 2007 07:00,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천리포해수욕장 인근에 사는 지종상(64) 김춘자(60여) 씨 부부는 7일 일찌감치 이른 아침을 먹고 멸치잡이에 나설 준비를 했다.

8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멸치잡이는 12월이 끝물인 데다 올해 어획량이 기대만 못해 지 씨 부부는 몸과 마음이 모두 급했다.

점심을 대용할 요깃거리와 그물을 챙기는데 갑자기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불안한 마음에 김 씨는 보일러실로 향했다.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혹시 배에서 기름이 새나? 지 씨는 멸치잡이 어선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기우()였다. 부부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며 배에 올랐다.

하지만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재앙이 이들 부부에게 닥쳐왔다.

8일 오전 지 씨는 60년 한평생을 함께 보낸 바다 앞에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죽음 직전 마지막 발버둥을 치듯 새까맣게 타들어간 바다는 연방 기름덩어리를 토해 냈다.

주민들은 바가지 하나씩만 손에 쥔 채 검은 바다와 맞섰다. 수백, 수천 바가지를 퍼냈지만 죽음의 기운은 해안을 넘어 백사장으로, 옹벽으로 점점 깊게 파고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재앙은 절망으로 변해 갔다.

객지로 나간 자녀들은 아버지, 어머니까지 오염되겠다며 짐을 싸라고 보챘다.

몇 백만 원을 들여 그물까지 새로 마련했는데, 어떻게 떠납니까.

검은 바다와 사투를 벌이느라 넋조차 놓을 수 없는 주민들에게 며칠 뒤 한줄기 가느다란 희망의 빛이 비쳤다.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재명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