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December. 17, 2007 18:14,
정책홍보보다 정권홍보 열 올리는 언론통제처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4일 첫 국회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국정홍보처를 폐지하는 내용의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학자들도 대통령과 정권의 치적 홍보에 치우치는 홍보처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홍보처 폐지론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홍보처가 5월 중순 공무원 대면 접촉 제한과 각 부처 기사송고실 통폐합을 골자로 한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라는 취재통제안을 내놓은 뒤 더욱 거세지고 있다. 홍보처가 노 대통령의 왜곡된 언론 인식을 뒷받침하기 위해 언론통제의 전위대 역할을 하다 폐지 여론을 자초한 셈이다.
언론 통제방안 밀어붙여
노 대통령은 1월 국무회의에서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기사 흐름을 주도한다며 언론과 기자들을 비판했다. 이후 4개월 만에 새로운 언론통제 방안인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2003년 개방형 브리핑제 도입 이후 두 번째 단행된 기자실 통폐합 조치다.
신언론통제 방안의 중심에는 홍보처가 있다. 해외 사례를 수집해 초안을 만들고 언론과 학계의 비판을 막아내며 통제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 대통령이 최근 확실하게 기자실에 대못질을 하고라고 말해 홍보처의 밀어붙이기에 힘까지 실어주고 있다.
홍보처의 신 언론통제 방안이 나오기까지 홍보처는 단계적으로 언론을 압박했다.
홍보처는 2003년 3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개방형 브리핑제를 도입해 언론통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출입기자단을 없애고, 기자들의 각 정부 부처 출입을 제한하는 기자실 1차 통폐합을 주도했다.
이후 홍보처는 각 부처 및 공공기관이 신문에 광고를 낼 때 사전에 홍보처와 협의를 하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광고를 이용한 언론탄압이란 비판도 나왔다.
이와 함께 언론에 대한 대응 여부를 각 부처의 평가에 적극 반영했다. 언론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에 제소를 하거나 소송을 제기해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이끌어냈을 경우 좋은 평점을 주고 있다.
홍보처는 또 언론보도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발표된 취재통제안을 통해 비판적 언론의 활동은 위축시키고 반면 각종 산하 기관을 동원한 친 정부적 내용의 보도는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보처는 2003년 9월 통합 포털사이트인 국정브리핑을 개설하고 산하에 한국정책방송(KTV), 격주간지인 코리아플러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정홍보처가 운영 중인 이들 3개 홍보매체의 올해 예산은 220여억 원에 달한다.
최근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인원이 늘어난 KTV는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방안을 지지하는 방송을 집중적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KTV에 대해 내용이 알차다고 격찬했지만 최근 시청률은 0.06%에 불과하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국정브리핑은 정책홍보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비판적 언론보도에 대한 반박과 해명이 고작이라고 비판했다.
정권 홍보 전위대 역할
한나라당은 2005년 11월 정종복 의원 등 당 소속 의원 127명 전원의 명의로 홍보처를 폐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한나라당은 현재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계류 중인 이 법안을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서는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법안에는 홍보처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가 상세히 적시돼 있다. 우선 홍보처가 언론보도에 대한 자의적인 분류와 공무원들의 업무를 언론 대응실적으로 평가해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 보장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홍보처의 업무가 각 부처의 홍보업무와 중복돼 예산까지 낭비되고 있다는 점도 폐지 이유로 거론됐다.
법안을 발의한 정 의원은 홍보처는 국민의 혈세를 받아 정권홍보의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사례까지 적시했다. 김창호 홍보처장 명의의 노무현 따라잡기라는 대통령 홍보책자를 발간하면서 홍보처 예산 6000만 원을 사용했고 KTV에서는 찬성자만 나오는 개헌 관련 토론회를 중계해 방송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았으며 정부의 정책책임자도 아닌 이병완 참여정부평가포럼 대표의 강의를 중계하는 등 노골적으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는 것.
학계에서도 홍보처가 옥상옥으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국가나 정부 홍보를 위해 통합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기구를 둔 나라는 독재국가를 빼 놓고서는 없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로서 홍보처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며 정부 각 부처 내에 홍보 공보 기능의 기구가 있는 상황에서 홍보처의 존재는 옥상옥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홍보처는 언론매체에 대한 협조 관리 능력도 없고 각 부처가 하고 있는 공보 홍보 업무와 크게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언론통제처의 역할만 할 뿐이라며 기능상 홍보처는 존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권력 바뀔 때마다 언론상대 악역, 정권 하수인 멍에 못벗어]
국정홍보처는 정권 교체 때마다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홍보처는 한때 없어졌다가 다른 이름으로 다시 탄생하는 오욕()의 역사를 반복했다.
이는 대국민 정책 홍보라는 기치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나팔수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은 체제 선전, 언론 장악의 첨병으로 홍보처 등을 활용했다. 민주화 정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인사들도 정권을 잡은 뒤에는 언론 장악을 위해 홍보처를 정권 선전기구로 활용했다.
홍보처의 뿌리는 이승만 정권이 출범한 1948년 11월 설립된 공보처로 볼 수 있다. 당시 국영방송을 관리•통제하는 기구였던 공보처는 1956년 폐지됐다가 5•16군사정변 이후 공보부, 문화공보부, 공보처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1999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개편과 신설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멍에를 벗어 던지지 못했다.
이승만 정부 때는 1959년 자유당 정권을 비판하던 경향신문 폐간에 앞장섰다. 59년 4월 당시 경향신문 외에도 폐간이나 정간 처분된 일간 신문과 통신은 무려 10여 개에 이른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문화공보부는 철저하게 나팔수 역할을 담당했다. 1975년에는 유신체제의 언론 통제에 맞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의 강제 해직을 주도했다.
1980년 신군부는 언론 통폐합 및 언론기본법 제정, 민주언론인 해직 등 언론 탄압에 앞장섰다. 역대 홍보처의 장()들은 정치권 실세가 맡아 언론정책을 좌지우지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문공부의 주요 임무는 그 유명한 보도지침을 매일 언론에 하달하는 것이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보처가 언론 통제의 중심적 역할을 해 왔다며 공보처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2월 집권과 동시에 공보처를 폐지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폐지 1년 3개월 만인 1999년 5월 지금의 국정홍보처를 신설했다. 체계적인 국정홍보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슬쩍 이름을 바꿔 사실상 공보처를 부활시킨 것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홍보처가 언론 통제에 나섰다가 여론의 반발을 산 사안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독립 부처로 존재할 수 있는 기능이 별로 없는 홍보처는 존재의 이유를 끊임없이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정권 홍보나 언론 통제에 앞장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